'학교 졸업은 꿈이자 한이었죠'…눈물의 만학도 졸업식

입력 2017-02-17 13:41  

'학교 졸업은 꿈이자 한이었죠'…눈물의 만학도 졸업식

평생교육학교 진형중고 졸업식…최고령은 88세 정대성씨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17일 오전 10시께 서울 종로구 숭인동의 비좁은 골목 속 작은 건물에서 특별한 중학교 졸업식이 열렸다.

검은색 가운을 연분홍색 비단 리본으로 곱게 여민 졸업생들은 앳된 소년·소녀가 아니라 꼬불꼬불 파마머리나 성성한 백발을 찰랑대는 중·노년 어르신들이었다.


이날 이곳에서는 평생교육학교 진형중학교 제10회 졸업식이 열렸다. 학교건물 1층 대강당은 총 334명의 졸업생과 가족들, 교직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졸업생은 대부분 중년 여성이었다. 1950∼1960년대에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남자형제의 교육을 우선한 부모 탓에 학교 대신 일터에 나가야 했던 이들이라고 학교 측은 설명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전쟁을 겪는 등 혼란스러운 시대상에 치이느라 공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이날 최고령 졸업생으로 무대에서 졸업장을 대표 수여한 정대성(88)씨도 이 같은 이유로 구순(九旬)을 앞두고서야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정씨는 "전쟁 후에는 벼농사를 지으며 처와 사남매를 먹여 살리느라 까막눈으로 살았다. 세상을 밝게 살려면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카자흐스탄에서 일하던 셋째 아들이 암에 걸려 돌아와서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면서 "기분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내가 이거 하나 받으려고…"라며 졸업장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어루만지다가 눈물을 흘렸다.

서로 나이는 다르지만 늦게나마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소년 소녀처럼 까르르 웃고 떠들던 어르신들은 홍형규 진형중고교 교장이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느냐"며 축사를 시작하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이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영상 축전을 통해 "여러분께 그 졸업장은 꿈이자 한(恨)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자신감을 갖고 더 당당히 서시라"고 말하자 어르신은 한두 명씩 눈물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다 함께 '작별'(올드 랭 사인)을 부르는 시간이 되자 절반에 가까운 어르신들이 눈물을 닦느라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어르신들은 자신들이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 졸업장까지 받도록 뒷바라지했을 자식들로부터 꽃다발을 한 아름 받고 나서야 환하게 웃었고, 힘차게 교정을 나섰다.

hy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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