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결국 구속됐다. 박영수 특검이 두 번째로 청구한 영장이 법원에 의해 발부된 것이다. 삼성 그룹의 총수가 구속된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삼성이 받은 충격도 큰 것 같다. 삼성의 경영 공백이 불가피해지면서 한국경제에 미칠 여파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경영자총협회, 무역협회 등 재계 단체들은 국내 기업활동의 위축과 해외 이미지 추락을 걱정하는 입장을 내놨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렸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경위와 이유가 어쨌든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피의자 인권보호, 변론권과 방어권 보장, 엄정한 증거주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정농단의 실체를 밝히는 상당히 의미 있는 결정"이라면서 "이번엔 정경유착의 사슬을 반드시 끊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경진 국민의당 수석대변인은 "법원이 현명하고 적절한 판단을 했다"면서 "삼성과 이재용 피의자는 사실관계 전모를 자백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마다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너무 격한 반응은 바람직하지 않다. 법원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을 일단 존중하고 차분히 다음을 생각하는 것이 맞다.
이 부회장에 대한 재청구 영장이 발부된 데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 39권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다. 서울중앙지법의 한정석 영장전담 판사는 "새롭게 구성된 범죄 혐의 사실과 추가로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종합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안 전 수석의 수첩들에는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에 관한 내용이 삼성바이오로직스, 금융지주회사 등 키워드별로 시점에 따라 상세히 정리돼 있다고 한다. 이규철 특검보는 "3주 간 추가 수사를 하면서 뇌물죄의 대가 관계가 삼성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1차 영장에서 특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대가로 금품이 지원됐다고 봤다. 그런데 재청구 영장에서 금품 제공의 배경을 경영권 승계 전 과정으로 확장한 논리가 받아들여진 듯하다.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힘을 얻은 특검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뇌물 혐의 적용에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최순실 씨와 안 전 수석의 공소장에 뇌물 혐의를 추가하는 문제를 검찰과 협의하겠다고 밝힌 것을 봐도 그렇다. 앞서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최 씨와 안 전 수석을 구속기소하면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강요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특검은 이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한 연장선에서 이들 두 사람을 뇌물수수의 공범으로 보고 있다. 뇌물의 종착지로 박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박 대통령이 특검 조사를 받을 것인지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단 분위기는 조만간 조사를 받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 같다. 박 대통령 측은 조사에 앞서 충분히 법리를 보강하기 위해 내주 초 대면조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 측 관계자는 "철저한 준비를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조사가 진행되면 성실히 임해 의혹이 없도록 할 것"이라면서 "하지만 뇌물죄는 성립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 측도 이 부회장의 구속이 뇌물죄 적용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음을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대통령 측 입장에서는 이 부회장 구속으로 생각이 더 복잡해졌을 수 있다. 오는 24일로 잡힌 헌법재판소 최종변론에 대통령이 출석할지 여부와 특검 수사기간이 연장될 경우에 벌어질 수 있는 상황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래도 일이 여기까지 온 이상 특검 조사에 당당히 임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본다. 특검도 수사의 완결성을 높이려면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해야 하는 입장이다. 특검이 조사의 형식, 방법, 장소 등을 놓고 너무 경직된 태도를 보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부회장 구속으로 큰 고비를 넘긴 만큼 이젠 좀 더 유연한 시각으로 전체를 보는 것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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