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크크크크…."
여자 루지 국가대표팀의 성은령(25)은 18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기자가 질문을 마치기도 전에 특이한 소리로 웃어댔다.
그가 웃음을 터뜨린 시점은 "성은령 선수는 나름대로 열심히 잘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까지 들은 뒤였다.
굳이 다 듣지 않고도 질문 내용을 다 알아들었다.
그는 여전히 웃으면서 "그러게요. 좋게좋게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성은령이 '박힌 돌'이라면 독일에서 귀화한 동갑내기 아일렌 프리슈는 '굴러온 돌'이다.
성은령은 한국 여자 루지의 기대주였다.
용인대에서 체육을 전공하던 성은령은 대한루지경기연맹 고문이기도 한 임순길 용인대 교수의 권유로 루지에 입문했다.
어린 시절 놀이공원에 가면 '88열차' 같은 기구만 골라 타던 성은령이다. 썰매 하나에 몸을 맡긴 채 시속 100㎞ 넘는 속도로 트랙을 내려오는 루지의 매력에 금세 빠져버렸다.
성은령은 "친구들은 서울에서 연애도 하면서 재미있게 살겠지만, 난 이렇게 평창 산골에서 운동하는 게 더 행복하다"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 한국 여자 루지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에도 출전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31명의 선수 가운데 29위에 올랐다.
한국에서 열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겠다며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던 지난해 어느 날, 당황스러운 소식을 접했다.
연맹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비해 '루지 최강국'인 독일 출신의 여자 선수 귀화를 추진한다고 했다.
프리슈는 2012년 주니어 세계선수권 2관왕에 오른 촉망받는 유망주였지만, 성인이 된 뒤 독일 내 경쟁에서 밀리자 은퇴했다.
성은령은 연맹이 프리슈를 영입한 데 대해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섭섭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야 하지 않겠느냐"며 "나보다 잘하는 선수이니 많이 배우고 노력해서 같이 발전하겠다"고 말했다.
마치 제3자로서 얘기하듯 '쿨'한 말투였다.
그는 프리슈에 대해 "좋은 자극제이자 경쟁 상대이면서 동료"라며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는 내가 큰 도움을 준다"며 크게 웃었다.
한국 토종 선수들은 대부분 대학생 때 루지를 시작했지만, 프리슈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전문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랐다.
당연히 썰매를 타는 감각이 남달라 한국 대표팀 동료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은퇴 후 1년 정도의 공백 때문인지 지난해 연말 귀화 이후 아직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17일 열린 예선 격인 네이션스컵에서 성은령은 14위, 프리슈는 17위에 올랐다.
성은령은 "사실 우리 사이에서도 그게 이슈이긴 하다"며 깔깔 웃더니 "아직은 적응하는 기간이지 않겠냐"고 했다.
그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톱10' 안에 들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프리슈와 경쟁하면서 열심히 하면 톱10을 넘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다시 한 번 쾌활한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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