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 100년 대계 '퇴색'…"1인체제 강화 시진핑에 불리" 지적도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중국이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의 사망 20주기를 맞았지만 전례없이 조용하게 행사를 넘겼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19일 덩샤오핑 서거 20주기를 맞아 대규모 기념행사를 개최하지 않았고 신화통신, 중국중앙(CC)TV, 인민일보 등 주요 관영매체도 덩샤오핑의 업적을 조명한 추모성 기사를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지난 2007년 10주기 때 덩샤오핑 문집을 발간하고 학술토론회 등 일련의 행사를 진행한 것과는 딴판이다.
중국 지도부 역시 별다른 추모사조차 내놓지 않아 덩샤오핑 20주기에 대한 무관심을 반영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0일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정주년(5년, 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에 대규모 행사를 가져온 것과 달리 이번 덩샤오핑 20주기는 중국이 '로키'(low-key)로 일관했다고 전했다.
다만 인민일보의 인터넷판 인민망이 덩샤오핑의 고향 쓰촨(四川)성 광안(廣安)시에서 지방정부 주관으로 이뤄진 서화전 등 소규모 기념행사 소식 만을 전했다.
중국의 이런 소극적인 추모 열기는 덩샤오핑이 제시한 방책이 현재의 중국 지도부의 지향점과 상당히 어긋나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신경보(新京報)는 저우톈융(周天勇)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원 부원장의 기고문을 통해 "개혁·개방의 심화만이 덩샤오핑을 추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을 뿐이다.
중국 100년의 대계를 설정했다는 덩샤오핑은 문화대혁명 종결후인 1978년 '흑묘백묘론'과 함께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를 도입했고 1992년엔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통해 개혁·개방을 선도한 인물이다. 올해는 덩샤오핑 서거 20주기이자, 남순강화 25주년이기도 하다.
특히 대외적으로 덩샤오핑은 '군대는 인내해야 한다'(軍隊要忍耐)며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의 외교방책을 제시했다.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의 해법에 대해선 '현명한 후세들'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은 덩샤오핑의 유지와 달리 '유소작위'(有所作爲·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뤄낸다)에서 한발 더 나아가 책임대국론을 주창하며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세계 2위의 경제체로 부상함에 따라 군사력을 급속도로 증강하며 부국강병과 함께 대국외교로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중국 역사학자 장리판(章立凡)은 "덩샤오핑 추도는 현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기조에서 벗어난 것"이라며 "개혁·개방을 중시한 덩샤오핑의 기조는 현 지도부의 집정 방침과 상당히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상하이(上海)정법학원의 천다오인(陳道銀) 교수도 "시 주석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유지를 공식적으로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자신의 집정 이념에 맞게 덩샤오핑 이론의 조정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왕이웨이(王義외<木+危>) 인민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도광양회의 사상적 근원은 중용(中庸)과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도 하게 해서는 안 된다)의 동양문화"라며 "'군자 대국'인 중국이 포기할 수 없는 관념"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덩샤오핑 업적에 대한 재조명이 1인 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시 주석에게 불리한 구도이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천 교수는 "혁명원로 추도는 자신의 개인적 권위 강화를 추구하는 시 주석에게는 큰 관심사가 아니다"며 "지금은 시진핑 시대이고 시 주석은 전임자의 영광에 자신이 가려지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리판도 "최근 들어 고위 지도부가 혁명원로의 사망일보다는 출생일에 맞춰 기념행사를 가지려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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