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선원 8명 추위 떨며 서로 독려 탈출 1시간 만에 극적 구조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배를 포기한다. 구명정으로 탈출하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목숨을 구한 부산선적 근해대형선박 어선인 K(278t·승선원 10명)호의 생존 선원 8명이 사고접수 9시간 반 만인 20일 오후 11시께 제주로 돌아왔다.
풍랑주의보 속에 배가 가라앉은 상황에서 승선원 10명 중 대다수인 8명이 생존한 것은 선장과 선원들의 발 빠른 대응과 구명정 등 구호장비를 평소 잘 관리해왔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선장 김모(59·부산)씨 등 8명은 제주항 7부두에 도착한 뒤 고열 등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기자들의 질문에도 아무런 말 없이 곧바로 제주 시내 병원으로 갔다.
이들을 태우고 제주항에 온 제주해경 함정 관계자는 "배가 어떤 이유에선지 침수되자 위기를 느낀 승선원들이 배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승선원 중 누군가 곧바로 배에 있는 구명정을 터트려 펼쳤고 한 명씩 구명정으로 옮겨타기 시작했다.
어선으로서는 대형선박인 K호는 구조 장비인 구명정을 별도로 보유하고 있었다. 구명정은 발이나 손으로 강하게 때리면 자동으로 펼쳐져 보트처럼 타 탈출할 수 있다. 배가 가라앉은 경우에도 자동으로 펼쳐진다.
제주해경 관계자는 "배가 어느 정도 가라앉자 배를 구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인명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구명정을 펼쳐 탈출한 것"이라며 "짧은 순간의 판단이 많은 승선원의 목숨을 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사고 해상의 기상 상황과 신고 과정을 보면 긴박한 상황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당시 사고 해역에 풍랑주의보가 발효 중인 가운데 물결이 4∼5m 높이로 매우 높게 일고 바람도 초속 18∼21m로 강하게 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갑작스럽게 침몰하던 K호는 이날 오후 1시 29분께 SSB(무선통신) 비상 조난 주파수로 작은 조난신호를 보낸 뒤 6분 뒤에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신호가 끊어졌다.
SSB 주파수를 맞춰 둔 해경 함정이 수신기로 흘러나오는 조난신호를 듣게 돼서야 침몰 상황이 빠르게 전파됐다.
제주해경 헬기가 오후 1시 58분께 제주공항을 긴급히 이륙해 20여분 만에 사고 해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배가 완전히 가라앉아 보이지 않았다.
구명정을 탄 승선원 8명은 구조신호를 보낸 뒤 탈출하고도 1시간가량 물결이 높게 이는 해상에서 추위에 떨다가 오후 2시 29분께 수색에 동참한 어선에 의해 발견돼 구조됐다.
구명조끼를 입은 채 해상에서 표류하던 김모(57·부산)씨와 실종 상태인 조모(66·부산)씨는 안타깝게도 구명정에 오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생존 선원들은 구조 후에도 해경 함정에 올라타 조씨에 대한 야간 수색에 동참하다가 고열 증세로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 때문에 예정보다 다소 이르게 제주로 오게 됐다.
제주해경은 이들 선원이 휴식을 취한 뒤 21일 선장 김씨 등을 대상으로 사고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K호는 고등어와 전갱이 등을 주로 잡는 대형선망 어선으로, 19일 0시 28분께 서귀포항을 출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 관계자는 "어선 진행 방향을 조종하는 조타장치가 고장 났다고 최초 신고가 접수됐으며, 배에 높은 파도가 연달아 몰아쳐 침수되면서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K호는 20일 오후 1시 29분께 제주 우도 북동쪽 40㎞ 해상에서 침몰했다. 이 사고로 선장 김씨 등 8명은 구조됐으나 1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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