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성격·용인술·정책추진도 '닮은꼴'…선거 과정도 비슷
"사후 평판도 닮을까?"…'인디언 추방법'-'反이민 행정명령' 오버랩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김종우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7대 대통령인 앤드루 잭슨과의 '유사성'이 화제가 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대통령 취임 이후 앤드루 잭슨과의 유사성을 거론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8일 오후 플로리다 주에서 지지자 9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장외 유세에서 '가짜뉴스 미디어' 비난에 초점을 맞추면서 1880년대 대통령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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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토머스 제퍼슨(3대 대통령; 1801~1809년 재임), 앤드루 잭슨(7대; 1829~1837년), 에이브러햄 링컨(16대; 1861~1865년) 등 우리의 위대한 많은 대통령은 언론과 맞서 싸우고 (언론의) 거짓말을 지적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잭슨을 자신의 롤-모델로 삼은 듯한 정황도 적지 않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그의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는 잭슨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그는 또 취임식 당일 자신을 보러 취임식장을 찾은 인파를 거론하며 "앤드루 잭슨 이래 이 같은 성원은 없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책사인 스티븐 배넌은 지난달 20일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를 놓고 19세기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정치를 했던 잭슨에 비유했다.
그는 "앤드루 잭슨 이래로 이번 트럼프와 같은 연설을 한 대통령은 없었다"면서"트럼프의 연설은 잭슨 스타일과 많이 닮았다. 거기에는 애국주의라는 깊은 뿌리가 있다"라고 했다.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널도 최근 "미국 대중들은 예전과는 다른 대통령을 원한다. 이는 의심할 바 없이 트럼프 대통령"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앤드루 잭슨과 비교하는데 매우 그럴듯한 비교"라고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과 잭슨 사이에 닮은 점이 적지 않다. 우선 두 사람 모두 워싱턴 기성 정치에 발을 담지 않았던 '아웃사이더'다. 안하무인에 거칠 것 없는 저돌적인 성격도 닮은꼴이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부터 6대 존 퀸시 애덤스까지 전임 대통령 6명 모두 버지니아와 매사추세츠 주의 저명인사들인 반면 잭슨은 테네시 주의 고집불통 농민 영웅 출신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기업인으로서 성공했지만, 워싱턴 정치권에서는 경험이 전혀 없는 그야말로 '아웃사이더'에 불과했다.
다혈질에 성마른 잭슨은 '올드 히커리'(Old Hickory)라는 별명이 있다. 그는 아내의 과거를 문제 삼은 정적들과 세 차례 죽음의 결투를 벌이기도 했다. 트럼프도 성격 면에서 잭슨 전 대통령에 뒤지지 않는다.
또 잭슨이 소외받은 농민들을 자신의 지지층으로 삼았듯이, 트럼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대도시 백인 노동자층과 농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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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두 사람이 치렀던 선거 과정은 매우 유사하다. 인디언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 주를 할양받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잭슨은 1823년 테네시 주 상원의원이 됐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1824년 대선에서 백악관 입성을 바랐지만, 당시 민주공화당 간부들은 잭슨 전 대통령을 기피인물로 꺼렸다.
코커스에서 당시 재무장관이던 윌리엄 크로퍼드를 대선 후보로 선출하자 잭슨은 "국민의 뜻과 평당원들의 뜻을 무시하는 당 간부들의 독단"이라고 불복하자 평당원들이 이에 호응했다.
이에 따라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최초의 전당대회가 열리고 여기서 잭슨이 후보로 선출됐다. 선거는 잭슨과 크로퍼드, 존 퀸시 애덤스, 헨리 클레이가 정당이 아닌 지역 지지기반을 위주로 한 이전투구 양상이 됐다.
선거 결과 잭슨이 다수표를 얻었으나, 과반수에 미치지 못해 당시 규정에 따라 연방 하원 투표로 대통령을 정하게 돼 결국 애덤스가 6대 대통령으로 뽑혔다.
그는 4년 뒤인 1824년 재선을 노리는 애덤스와 또다시 격돌했다. 이 선거는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인신공격과 흑색선전이 판치는 선거로 기록됐다. 잭슨은 선거에서 선거권 확대에 힘입어 가난한 농민들의 몰표로 승리했다.
잭슨이 백악관에 입성하기까지 과정은 트럼프가 지난해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에 견줄 수 있다.
잭슨이 1824년 선거를 두고 "부당거래"라고 비난한 것이나 트럼프가 지난해 대선에서 부정투표가 횡행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판박이다.
게다가 잭슨이 선거에서 당시 대중 미디어의 총아로 부상하던 신문을 적절히 활용한 것처럼 트럼프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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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과 트럼프의 용인술도 비슷하다는 지적이다. 잭슨은 북부 출신이나 명문가 출신이 많은 관료를 불신하고 자신과 사이가 각별한 몇몇 사람들과 국정을 토론하는 '밀실 정치'를 선호했다.
트럼프가 취임 후 내각 및 백악관 참모 인선, 반(反) 이민 행정명령을 비롯한 각종 정책을 몇몇 측근들과 상의해 결정하는 양상이 잭슨의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하지만 두 사람 간 유사성에는 한계가 있다고 역사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2008년 잭슨의 전기 '아메리칸 라이온'을 집필한 존 미첨은 "잭슨이 1828년 압도적 표차로 승리한 것과 달리 트럼프는 지난해 일반 투표에서 300만 표를 뒤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잭슨이 겉으로는 정치 아웃사이더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는 정치선언을 할 때면 측근들과 깊은 대화를 하고 면밀한 정치적 계산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미첨은 이어 "잭슨은 낮에는 거친 정치인이었지만, 밤에는 신중한 외교관 스타일"이라며 "트럼프가 잭슨과 마찬가지로 거침없는 언행을 할 때 전략적 고려를 바탕으로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문제는 트럼프의 '잭슨 동일시' 전략이 잭슨의 부정적 레거시(업적)와 사후 추락까지 닮을 수 있다는 것이다.
후대에 가장 비판을 받은 잭슨의 정책은 '인디언 이주정책'이다. 잭슨은 1830년 제정된 '인디언 추방법'에 따라 미시시피 강 동쪽에 살던 인디언들을 아칸소와 오클라호마의 보호 구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4만5천여 명 이상의 인디언들이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을 따라 서쪽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추위와 전염병 등으로 4천여 명이 숨졌다. 잭슨의 '인디언 추방법'은 트럼프의 '반 이민 행정명령'과 오버랩되는 지점이다.
잭슨의 평판은 지난해 재무부가 "미국의 20달러 지폐 앞면 인물을 현재의 앤드루 잭슨 대통령에서 흑인 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하면서 완전히 무너졌다고 언론들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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