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국빈방문을 놓고 영국 하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오갔다고 미국 CNN 방송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방문을 여왕의 초청을 받는 '국빈 방문'이 아니라 총리의 상대가 되는 '공식 방문'으로 격을 낮출 것을 요청하는 온라인 청원에 180만명이 서명함에 따라 열린 이날 하원 회의에선 방문 격식을 조정할지를 놓고 의원들 간에 격론이 오갔다.
포문은 노동당 소속 폴 플린 의원이 열었다.
플린 의원은 "여기 있는 우리 모두 미국의 대통령제와 헌법, 역사에 심히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무례하게 굴 생각이 전혀 없다"고 운을 떼고는 트럼프의 지적 능력을 '단세포동물'(protozoan)에 비유하며 '심술부리는 애 같은' 대통령에게 국빈 방문이라는 영예를 준다면 영국이 그의 행동이나 발언을 인정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같은 노동당의 데이비드 래미 의원은 미국 대통령의 영국 방문은 당연하지만 겨우 취임한 지 일주일 만에 국빈 방문이라는 지위를 준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역대 미 대통령 중 이처럼 발 빠르게 초청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취임한 지 28개월이 지나서야 영국에 국빈 자격으로 초대받았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초청하기로 한 영국 정부의 결정이 "모든 원칙을 내다 버린 것"이라며 정부가 무역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에 나왔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케네디 전 대통령 때도 하지 않았고, 트루먼 전 대통령이나 레이건 전 대통령 때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 남자에게는 '우리가 다 내어놓을 테니 제발 와달라, 우리는 동반자가 절실하다'라고 말하는 짓을 해야 하느냐"며 "이 나라가 그보다는 위대하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보수당 의원들은 원래 계획대로 국빈 방문 자격을 유지해야 한다며 팽팽히 맞섰다.
사이먼 번스 보수당 의원은 "미국은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또한 현재도 가장 큰 동맹국"이라며 "우리가 필요로 할 때, 또는 그들이 필요로 할 때 항상 어깨를 맞대고 우리 옆에 있어 줬다"고 말했다.
번스 의원은 "사적인 견해나 터무니없는 성격이나 특징에 기반을 둔 개인에 대한 평가 때문에 영국의 국익을 훼손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덧붙였다.
크리스핀 블런트 의원도 초청을 철회하는 것은 여왕을 모욕할 위험이 있다며 2020년께로 초청을 연기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2020년은 영국의 청교도인들이 미국으로 떠난 지 400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을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영국에선 지난 1월 미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테리사 메이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 계획을 공개한 뒤로 반대 여론이 들끓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방문하더라도 공식 방문으로 격을 낮춰야 한다는 내용의 청원에 지금까지 180만명이 서명했다.
메이 총리는 이같은 청원에 공식 거부 의사를 밝혔으나 대안으로 의회가 휴회하고 영국 총리가 여름 휴가를 보내기 위해 스코틀랜드에 머무는 8월 중에 초청하는 방안이 거론된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이렇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의회 연설을 자연스럽게 막고, 런던 버킹엄 궁 대신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지는 발모럴성에서 여왕이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하게 된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국빈 방문이 아닌 공식 방문의 경우 여왕의 마차에 탑승하거나 축포, 버킹엄 궁에서의 연회 같은 의식이 생략된다.
한편 이날 하원에서 의원들 간에 설전이 벌어지는 동안 건물 밖에는 시민 수백명이 모여들어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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