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금 부담에 소비여력 약화…취약층 대출 부실화 우려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가계 부채에 대한 우려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은 21일 가계부채를 나타내는 통계인 가계신용 잔액이 작년 말 1천344조3천억원(잠정치)이라고 발표했다.
그동안 가계부채가 1천300조원을 넘은 것으로 추정됐지만, 공식적 통계로 확인되기는 처음이다.
가계가 안고 있는 과도한 부채는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불린다.
민간의 소비 여력을 줄이는 한편, 자칫 금융시장의 안정을 흔들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인이기 때문이다.
◇ 소득은 제자리인데 가계부채는 고공행진
보통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가계 빚이 늘 수 있지만 문제는 증가 속도다.
지난해 가계부채 증가율은 11.7%(141조2천억원)로 2006년(11.8%) 이후 사상 두번째로 높았다.
또 2015년(10.9%·117조8천억원)에 이어 2년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반면 소득은 사실상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통계청의 가계 동향 자료에 따르면 가구당 월평균 소득 증가율(전년동기 대비)은 작년 1분기 0.8%, 2분기 0.8%, 3분기 0.7%에 그쳤다.
물가상승을 감안한 실질소득은 작년 1분기 -0.2%, 2분기 0.0%, 3분기 -0.1%로 오히려 뒷걸음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빚은 눈덩이처럼 늘다 보니 서민층의 삶은 팍팍할 수 밖에 없다.
통계청,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의 '2016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가계는 세금 등을 제외한 가처분소득의 26.6%를 대출 원리금을 갚는 데 쓰는 것으로 파악됐다.
가계부채를 통계청의 2017년 추계인구(5천144만6천명)로 나누면 1인당 평균 2천613만원의 빚을 안고 있는 셈이다.
올해 들어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했지만, 집단대출 등을 살필 때 당분간 가계 빚 증가세는 이어질 공산이 크다.
한은은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올해에는 기약정 집단대출이나 비은행 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 금리상승에 취약계층 우려…소비 제약으로 성장에도 걸림돌
가계부채가 금융시스템의 위기로 전이될 개연성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지만 불안감은 커졌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취약계층이 받을 타격이다.
작년 말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을 계기로 국내 시중금리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고 가계의 빚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달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연 3.29%로 22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한은의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취약차주는 작년 9월 말 현재 146만명이고 이들이 받은 대출금은 약 78조6천억원으로 추정된다.
취약차주는 금융기관 3곳 이상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신용(신용등급 7~10등급) 또는 저소득(소득 하위 30%)에 해당하기 때문에 금리 인상에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또 가계부채는 민간소비를 위축시킬 악재로 꼽힌다.
한국은행은 지난 1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가계부채 증가가 단기적으로 경기 활성화에 도움을 주지만 가계부채 누적에 따른 저량효과로 인해 경제성장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경제전망보고서에서도 민간소비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원리금 상환부담 가중을 꼽았다.
민간기관에서는 구체적인 수치를 담은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작년 11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올해 가계부채가 소비증가율을 0.63%포인트 떨어뜨릴 것으로 추산했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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