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100일] "닭·오리 다 묻고 왕래 끊긴 고립생활"

입력 2017-02-22 05:31   수정 2017-02-22 06:18

[AI 100일] "닭·오리 다 묻고 왕래 끊긴 고립생활"

진천 이월면 오리 싹쓸이 살처분…인적 없는 마을 적막감만

구제역 첫 발생 보은 휴업 속출…"축산기반 무너질라" 걱정

(전국종합=연합뉴스) 변우열 박철홍 기자 = "조류인플루엔자(AI)가 터진 뒤 한 달은 술로 보내고, 두 달은 꼬박 청소하며 지냈습니다"




전남 해남군 산이면의 A(76)씨는 간밤의 거센 바람으로 빈 축사에 흘러들어 온 먼지를 쓸어내며 눈물을 훔쳤다. 이 농장은 지난해 11월 16일 AI가 처음 발생한 곳이다.

AI가 터진 지 벌써 100일이 됐지만 언제 다시 닭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기약조차 없다.

A씨는 4만여 마리의 닭을 살처분하고 꼬박 한 달간 집에서 술만 마셨다. 방역 당국으로부터 AI 예방 지침을 한차례도 받은 적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A씨는 떠올리기조차 싫었다.

'AI 최초 발생 농가'라는 오명에 친구들도 만나지 못했다.

그 후 두 달 동안은 매일 축사 청소와 소독에 매달렸다. 닭장을 안방 가꾸듯 쓸고 닦았다.

5천만원을 들여 철새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철조망을 치고, 방역 출입구도 따로 설치했다.

통상 살처분 후 한 달 후 실시하는 환경검사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으면 재입식 시험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전국에 AI가 창궐하면서 A씨 농장의 재입식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A씨는 "AI가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초 발생 농가의 재입식에 대해 방역 당국이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며 한숨을 쉰 뒤 다시 빗자루를 들고 농장 구석구석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AI와 구제역 등 가축 전염병이 휩쓸고 간 농촌 마을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한 상태다.

'AI 융단폭격'을 맞은 충북 진천군 이월면 삼용리는 한낮에도 주민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을씨년스럽다. 길목마다 이동제한 경고판과 플래카드들이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어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돈다.

지난해 11월 23일 이 마을 한 종오리 농장에서 발생한 AI는 급속히 인근 농장으로 번졌다. 결국, 많을 때 13만8천여 마리에 달했던 이 마을 17개 농가의 오리가 모두 살처분됐다. 살아 있는 오리가 한 마리도 남지 않을 정도로 초토화됐다.

AI에 대한 공포가 커지면서 가금류 사육농가가 밀집해 있는 진천군과 음성군의 농촌 마을은 '육지의 섬'이 됐다. 이웃과도 왕래를 끊은 채 마치 '감옥'에 있는 것 같은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마을 정모(52)씨는 "우리 농장에서 AI가 발생한 탓에 축산농가는 물론이고, 다른 이웃 주민들에게도 마치 죄인이 된 심정"이라며 "AI가 마을 전체로 번진 뒤에는 이웃끼리도 만나는 것을 꺼릴 정도"라고 말했다.

또 다른 농민은 "벌써 3개월가량 오리를 키우지 못해 생활비도 거의 바닥이 났다"며 "앞으로 어떻게 생활할지 막막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5일에는 구제역까지 터졌다.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충북 보은군 마로면 일대는 쑥대밭이 됐다. 주민들이 외출 자체를 꺼려 대낮에도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식당과 술집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해지기 전에 문을 닫아 밤에는 '암흑천지'로 변한다.

문을 열어도 찾아오는 손님이 없자 일부 식당은 아예 임시휴업을 택했다.

일주일 넘게 구제역 추가 발생이 없는 데도 축산농민들은 여전히 좌불안석이다.

300여 마리의 한우를 키우는 이모(52)씨는 "한동안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소한테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며 "작은 기침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피 말리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고 초조한 심정을 토로했다.

bw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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