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가계 빚이 결국 1천300조 원을 넘어섰다. 21일 한국은행이 집계한 작년 말 현재 가계신용 잔액은 1천344조3천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1.7%(141조2천억 원) 늘었다. 연간 증가 폭이 가장 컸던 해는 2015년으로 117조8천억 원 늘었다. 지난해 증가액은 이보다 20%가량 많은 것이다. 또 지난해 가계부채 증가율은 2006년(11.8%)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았다. 작년 가계부채가 1천300조 원 선을 넘어선 것은 충분히 예상됐다. 문제는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가계 빚 증가를 억제하려 한 정부의 노력이 무색할 지경이다. 은행들은 작년 2월 새로운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도입해 돈줄을 조였다. 그러나 대출 수요가 제2금융권으로 옮아가면서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가계 빚은 작년 말 현재 1인당 2천613만 원에 달했다. 과다한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에 초래하는 가장 심각한 부작용은 소비 위축이다. 당국의 '2016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가계는 가처분소득의 26.6%를 대출 원리금 상환에 썼다. 전년 조사치보다 2.6%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특히 대출이 있는 가구의 70.1%는 '원리금 상환이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빚이 증가하는 만큼 소득이 늘면 모르지만 실질 소득은 되레 뒷걸음질 치는 상황이다. 국내 시중금리도 지난해 미국 금리 인상을 계기로 상승하고 있다. 지난달 은행의 신규 취급 가계대출 금리는 연 3.29%로 2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렇지 않아도 소비심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이다. 한국은행의 '1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7년 10개월 만의 최저치인 93.3으로 떨어졌다. 올해 한국 경제는 수출보다 내수 부문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소시에테제네랄(SG)은 지난 9일 한국 경제의 올해 성장률을 2.3%로 전망하면서 내수 부진을 주요인으로 들었다. 오석태 한국 소시에테제네랄증권 본부장은 기자들에게 "지난 2년간 한국의 내수경기는 비교적 나쁘지 않았지만, 올해부터 하향 사이클에 접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인식도 비슷한 것 같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6일 열린 경제관계 장관회의에서 "수출 회복세가 지속되고 있지만 금리 상승과 소비심리 위축으로 내수가 둔화해 경기 회복세를 제약하고 있다"면서 "심리 회복, 가계소득 확충, 생계비 부담 경감 등을 골자로 내수활성화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오는 23일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내수활성화 대책을 확정한다고 한다. 내수 회복에 도움이 될 만한 좋은 대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가계부채를 최악의 상태로 방치한 채 단기 대증요법으로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가계부채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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