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외교관등 연출·외국여성 연습후 실행…치밀·조직적인 암살극

입력 2017-02-22 14:38   수정 2017-02-22 16:02

北외교관등 연출·외국여성 연습후 실행…치밀·조직적인 암살극

北남성 건넨 독극물 외국女 2명 맨손에 발라 불과 2.3초만에 범행

말레이, 北국적자 8명 추적…외교관·고려항공 직원까지 포함





(쿠알라룸푸르·서울=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김지연 기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 사건을 수사 중인 말레이시아 경찰의 잇단 발표에 미궁 속에 있던 범행 당시 상황은 물론 북한 배후가 갈수록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말레이 당국에 따르면 김정남 얼굴을 겨냥해 독극물 공격이라는 잔혹한 범행을 실행에 옮긴 동남아 여성 2명 뒤에는 북한 국적 남성들, 특히 북한 대사관 직원과 고려항공 직원까지 최소 8명이 있었다.

범행 실행 여성들은 사전에 수 차례 예행연습을 했고 범행 후 독극물을 씻어냈으며 주동자인 북한인들은 검거된 1명 외에는 모두 달아나 잠적하는 치밀한 한 편의 암살극이 펼쳐졌던 것으로 파악된다.






◇ 北남성 건넨 독극물로 외국여성 2명이 공격 실행

말레이 경찰의 발표와 공개된 현장 폐쇄회로(CC)TV 등을 종합하면 지난 13일 오전 9시(한국시간 오전 10시)께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2(KLIA2)에서 마카오행 항공기 탑승을 위해 대기 중이던 김정남에게 두 명의 여성이 접근했다.

인도네시아 시티 아이샤(25)와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29)이 차례로 맨손으로 김정남의 얼굴에 종류가 알려지지 않은 독극물을 도포했다. 이때 걸린 시간은 불과 2.33초였다.

여성들이 바른 독극물은 북한 국적 남성들한테서 받은 것이었다. 여성들은 범행 후 손을 들고 화장실로 이동해 손에서 독극물을 씻어냈다.

김정남은 피습후 공항 안내데스크로 걸어가 자신이 당한 일을 설명했고 공항 내 치료시설로 인계됐다. 실신한 김정남은 푸트라자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피습 2시간 만에 사망 선고를 받았다.

15일 진행된 김정남에 대한 부검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말레이 보건당국은 21일 기자회견에서 심장마비 흔적이 없고 외상이나 찔린 흔적이 없다고 밝혔다.

김정남에게 물질을 살포한 두 여성 용의자는 가장 앞선 15일 차례로 말레이 경찰에 잡히고 나서 "장난 영상을 찍는 줄 알았다"는 등 상황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22일 칼리드 아부 바카르 말레이 경찰청장은 기자회견에서 CCTV 분석 결과를 토대로 두 여성이 독극물을 손에 바르고 있었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며 사전에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수차례 연습까지 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 北용의자 추적에 北대사관 직원까지 지목…뚜렷해지는 '北배후'

지난 17일 말레이 경찰은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아파트에서 리정철(46)을 체포했다. 그는 북한 국적이 명확히 적힌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었다.

암살에서 리정철이 맡은 역할에 대해서는 아직 관측이 여러 갈래다. 말레이시아에 3년째 거주 중인 것으로 알려진 그가 독극물 제조 역할을 맡았을 것이라거나 현지 접선책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말레이 경찰은 19일 1차 기자회견을 통해 홍송학(34)·오종길(55)·리재남(57)·리지현(33) 등 달아난 북한 국적 남성 4명을 이번 사건에 '깊이 연루된'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들은 시차를 두고 말레이에 입국했다가 사건 직후 한꺼번에 말레이를 빠져나갔다. 말레이 경찰은 이들 4명 모두 이미 북한에 입국한 것으로 보고 있다.

말레이 경찰은 이어 22일 2차 기자회견에서는 앞서 연루자로 지목했던 리지우(30) 외 북한인 2명이 수사 선상에 있다면서 신원을 공개했다. 다름 아닌 말레이 주재 북한 대사관의 2등 서기관 현광성과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이다.

칼리드 청장은 북한 공작원이 배후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아직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북한으로 달아난 용의자들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고 아직 말레이에 머무는 연루자들에 대해서는 북한 대사관에 면담을 요청했으며 대사관의 '공동 수사' 요청을 일축하는 등 북한 측을 압박했다.




◇ 말레이에 사망자는 '김철'…김한솔 등 유족 나서지 않아

말레이 당국은 김정남을 그가 지니고 있던 여권대로 '김철'로 지칭했다. 유족이 나서 이 시신이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해 줄 때까지 명확한 신원 확인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인 셈이다.

21일 말레이 보건부에 이어 22일 말레이 경찰은 김정남이 둘째 부인 이혜경과의 사이에서 둔 아들 김한솔을 포함한 유족이 나서지 않았다고 밝혔다.

말레이 당국이 현지 사법 절차에 따라 부검을 진행하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는 동안 북한은 대사관을 통해 '방해 공작'에 나섰다.

강철 북한 대사는 17일 밤 말레이가 '적대세력'과 결탁했다고 주장했고 말레이 경찰의 1차 기자회견 이튿날인 20일에는 북한 국적자들을 용의자로 지목한 수사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북한이 '막무가내'로 나서자 말레이의 반발이 따라 커졌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21일 강 대사의 말이 "전적으로 부적절하며 외교적으로 무례했다"고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날 칼리드 청장 역시 "김정남 가족이 오면 보호할 것"이라며 북한 대사관 없이도 유족과 접촉이 가능하다며 북한보다 유족에 힘을 실어주는 듯이 발언했다.

cheror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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