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가 종점에 가까워지면서 '헌재 흔들기'와 그에 따른 법치주의 훼손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급기야 경찰이 헌재 재판관 개인별로 '24시간 근접 경호'에 들어갔다고 한다. 경찰이 헌재 재판관들을 개별 경호하는 것은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이후 두 번째다. 탄핵심판 결과를 놓고 대척점으로 갈라진 양 세력 간 공방이 격해져, 재판관 신변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현재 8인 체제인 헌재에서 재판관이 한 명이라도 더 궐위하면, 헌재 결정 자체가 법리적으로 어려워질 수 있다. 설사 최종 결정을 내린다 해도 불복의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헌재 재판관이 경찰 경호까지 받게 된 현실은 그 책임 소재를 떠나 국가적으로 매우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볼썽사나운 상황을 촉발한 직접적 계기는 전날 헌재 심판정에서 대통령 측 대리인들이 쏟아낸 '막말' 변론이다. 특히 대한변협 회장을 지낸 김평우 변호사는 특정 재판관을 '국회 측 수석대리인'이라고 몰아세워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는 '섞어찌개 범죄' '북한식 정치탄압' '야쿠자' 같은 자극적 언사를 재판부에 퍼부어, 한참 아래 연배인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한데 '감히 어떻게'라는 민망한 말까지 들었다. 대통령 측의 다른 대리인은 특정 재판관에 대한 기피신청을 제기했다가 곧바로 각하되기도 했다. 결국 재판부로부터 최종변론일을 사흘 늦추는 결정을 받아내긴 했지만 대통령 측 대리인들이 이날 보인 언행은 추태에 가까웠다. 최고 헌법기관인 헌재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심각한 법치 훼손이다. 이러니 헌재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불복 사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각계의 유관 단체들도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헌정회는 23일 성명을 내고 "헌재에 특정 결론을 주문하고 압박하는 것은 반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인 처사"라면서 "정치권과 각 시민단체는 시위를 중단하고 헌재 결정을 기다리는 인내와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밝혔다. 헌정회는 특히 여야 각 당의 대선 예비후보들이 헌재 결정에 무조건 승복할 것을 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단법인 '4월회'도 성명을 통해 "정치권은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성명을 내고, 국민은 헌재를 믿어야 한다"면서 "대통령도 헌재 결정이 조속히 이뤄지도록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변협은 "사법권 독립뿐 아니라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우려한다"면서 "특히 정치권은 탄핵심판을 당리당략으로 이용해 국민갈등을 증폭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헌재는 최종변론기일을 27일로 늦추면서 그 전날까지 박 대통령의 출석 여부를 알려달라고 했다. 대통령이 나오든 안 나오든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의 퇴임일인 3월 13일 이전에 결론을 낸다는 방침은 그대로 가져갈 듯하다. 이런 와중에 정치권 일각에선 박 대통령의 하야설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비상식적 변론 태도를 하야설과 묶어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만일 대통령이 헌재의 최종 결정 직전에 자진 사퇴를 선언한다면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국론 분열과 국민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 절대로 그런 사태까지는 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현 위기 국면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정상 회복을 기대할 만한 선에서 난국을 극복하려면 끝까지 법치주의를 고수해야 한다. 그러려면 여야 모두 대선 주자들부터 헌재의 최종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약속해야 한다. 그런 다음 '촛불'과 '태극기' 세력으로 그 공감대를 넓혀가야 할 것이다. 그게 남아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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