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혼술시대…"낯선 사람과 4개월째 대화하고 있다"

입력 2017-02-25 06:00   수정 2017-02-25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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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혼술시대…"낯선 사람과 4개월째 대화하고 있다"

'오픈채팅' 얼굴도 본적 없지만 소식 주고받으며 소통

지인인듯 아닌듯 애매한 관계지만 서로 공감

전문가 "고립된 상황서 인간관계 빈곤 해소 분출구"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밥이나 먹어야지"(심****님)

"맛있게 드세요. 오늘 아침은 뭡니까"(K*****님)

"삼겹살이면 좋겠네요"(홍****님)

"아 너무 피곤, 너무 열심히 달렸네요."(진**)

"진**님, 무슨 일 있나요?"(Y****)


오전 10시가 되자 김모(29·여) 씨의 휴대전화 메신저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단체 대화방을 열자 10여 명의 사람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글을 올리고 있었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로 이야기했고 아침에 애완견을 산책시키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 김씨의 안부를 묻자 김씨도 얼른 대화에 참여했다.

김씨는 이들과 벌써 4개월째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누군지 김씨도 잘 모른다.

얼굴을 본 적도 없고, 아는 것이라고는 그들 스스로가 소개한 나이와 성별밖에 없다.

김씨는 공무원 시험 준비 3년 차다. 매일 '혼밥(혼자 식사), 혼술(혼자 술)'을 해야 하는 고시원 생활이 지겨워 질 때쯤 한 메신저가 서비스하는 '오픈채팅'을 통해 이들을 알게 됐다.

오픈채팅은 관심사별로 누구나 대화방을 쉽게 만들었다가 닫을 수 있고 대화방에 들어가 자유롭게 이야기하다가 빠져나가는 형태의 서비스다.

김씨는 당시 '심심하다'라는 자신의 심경을 검색했을 때 뜨는 대화방에서 이들을 만났다.






이들과의 대화는 주로 안부를 묻거나 서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었다. 간혹 누군가 속내를 털어놓으면 위로와 공감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처음에는 김씨도 시간을 잠시 보내다 빠져나올 생각이었지만 점점 이 대화방에 빠져드는 자신을 느꼈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어서 가족이나 친구에게 말 못할 속내를 털어놓기도 좋았다.

대화방에는 김 씨처럼 몇 달씩 남아있는 사람도 있다 보니 김씨가 힘들다고 토로했을 때 처음부터 구구절절 사연을 설명하지 않아도 그간의 맥락을 이해하는 공감의 글이 올라왔다.

김씨는 "지인 아닌 지인 같은 애매한 사이지만 이들과 일상을 공유하면서 혼술, 혼밥으로 단절된 관계에 어느 정도 위안을 느낀다"면서 "대화가 싫을 때는 내 맘대로 그만둘 수 있고, 대화방 특성상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는 사람도 없어서 공부에 계속 집중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낸 뒤 집안에 혼자 남는 주부 안모(39·여)씨는 '30대 기혼여성'이라고 검색해 들어간 단체 대화방에서 만난 8명과 6개월째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시댁 이야기, 아이 키우기의 고단함 등 자신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공감해주는 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다.

안씨는 드라마 이야기를 싫어하는 남편을 대신해 인기 드라마의 방영이 끝난 뒤에는 드라마 이름으로 검색된 공개 대화방에 들어가 실컷 수다를 떨며 기분전환을 하기도 한다.

안씨는 "혼자 집을 지키는 시간에 밖에 나가 사람을 사귀기도 어렵고, 또 나가서 인간관계 형성에 에너지를 쏟는 게 싫을 때도 있다"면서 "인스턴트식으로 만나 수개월 인연을 이어가지만 언제 방을 빠져나와도 좋은 정도인 이런 인간관계가 편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픈 채팅을 해보니 드라마, 영화, 좋아하는 가수 이름 등 다양한 키워드별로 수십 개의 대화방이 개설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1∼2시간도 안 돼 사라져 버리는 대화방도 있지만 안씨나 김씨의 사례처럼 장기간 대화가 이어지는 경우도 꽤 많다고 이용자들은 말했다.

사람들은 왜 낯선 사람과의 대화를 장기간 이어가며 '지인인 듯 지인 아닌 관계'를 유지하는 것일까.

하승태 부산 동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을 '혼밥, 혼술'로 대변되는 고독하고 고립된 시대에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시도라고 풀이했다.

취업난과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친밀감 있는 인간관계를 스스로 닫아야만 할 때, 이런 어중간한 관계 속에서도 위로를 얻는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내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익명의 관계에서는 부담 없이 더 잘 털어놓을 수 있고, 누군가가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기만 해도 사회적 관계에 대한 욕구라든지 가슴속에 쌓인 감정들을 해소할 수 있다"면서 "시험 합격을 위해 누군가를 만나고 같이 밥을 먹는 데 시간을 보낼 수 없으니 언제든 쉽게 만들고 버릴 수 있는 이런 관계를 찾았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read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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