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층과 가까우면 자신에게 도움될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
(전국종합=연합뉴스) 김소연 기자 =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을 하는 A(50)씨는 2013년 11월 10년 동안 알고 지낸 지인들에게 깜짝 발표를 했다.
사실은 자신이 국정원 대전지부장'이라는 것.
그는 또 "국정원 간부 신분을 숨기려고 10여년 간 건축업을 하는 척했다"고 귀띔했다.
자신의 이름과 직함이 쓰인 검은색 명함까지 지인들에게 건넸고, 고위 공무원의 실명을 거론하며 친분이 있다고 자랑했다.
A씨는 점점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인 B(49)씨 등 2명에게 "판공비가 떨어졌으니, 100만원만 빌려달라"거나, 술이나 밥을 먹고 나서 B씨를 불러 계산하도록 하기까지 했다.
그 때마다 자신이 국정원 간부라는 것을 강조했고, 지인에게 좋은 부서로 발령시켜 주겠다거나 지하철 신축 공사 때 특혜를 주겠다는 사탕발림했다.
그러나 A씨가 국정원 간부라는 사실부터 각종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약속까지 모두 거짓이었다.
대전 동부경찰서는 최근 국정원 간부를 사칭해 2013년 11월부터 2015년 3월까지 B씨 등에게 총 4천900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A씨를 검거해 구속했다.
비슷한 일은 또 있었다.
지난 1월 지역의 한 세무서장에게 "나는 서울대 의대 교수인데, 돈 좀 빌립시다"라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세무서장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남성이었지만, 국세청 간부 이름까지 대며 넉살 좋게 대화를 이어갔다.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온 이 남성은 "인근 대학에 들렀다가 회의 참석차 광주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택시 안에 지갑을 놓고 내렸다. 돈이 없으니 50만원만 빌려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세무서장은 전화를 걸어온 남성을 실제 만나 급기야 50만원까지 건넸다.
그가 돌아오는 길에 사기라고 직감했을 때는 이미 남성이 돈을 들고 사라진 뒤였다.
권력기관 간부라거나, 사회 고위층이라는 다소 '황당한' 거짓말에 속아 돈을 건네는 사례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10년간 알던 사람이 알고 보니 국정원 대전지부장이라든지, 다짜고짜 전화와 서울대 교수라며 돈을 빌려달라는 허황한 거짓말에 당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은 이유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권력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는 분석한다.
사회에서 연줄과 권력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사기꾼들이 그럴듯하게 거짓말을 하면 자신에게 득이 될 수 있다는 기대로 돈까지 건넨다는 것이다.
김해중 대전보건대 과학수사과 교수는 "아직은 우리 사회에 권력과 가까워지면 그 덕으로 돈이나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깔린 게 사실"이라며 "이런 기대를 한 사람들에게 더 쉽게 거짓말이 먹혀들어가고, 결국 사기를 당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권력층에게 돈을 건네기 전 신분을 철저히 확인하고 권력에 기대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기대를 하지 않아야 사기를 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김 교수는 "요즘 웬만한 정부기관은 인터넷에 직원 정보를 공개하고 있으니, 홈페이지와 그 기관에 상대방 신분을 확인하는 게 좋다"며 "무엇보다 지나친 물욕과 자기 욕심을 없애는 것이 사기를 당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so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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