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줄어드니 학교도 줄여야" vs "학생·학부모, 지역 수요 외면"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설승은 기자 = 학교 한 곳을 새로 지으려면 다른 학교 한 곳을 없애라?
신도시 건설, 대규모 재건축 붐이 활발한 가운데 정부가 이른바 '학교총량제'를 적용, 학교 신설을 엄격히 제한하면서 곳곳에서 마찰음이 커지고 있다.
시도 교육청과 학부모 등은 인구 과밀 지역의 학교 신설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부는 학생 수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무조건적 신설은 허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학교 신설 잇따라 보류·불허
26일 교육계에 따르면 서울 강동송파교육지원청은 '국내 최대 규모의 재건축 단지'로 불리는 송파구 가락시영아파트 재건축 부지에 중학교(가락1중) 신설을 추진 중이나 교육부로부터 두 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학교 신설을 하려면 같은 학군 내에서 학교 한 곳을 폐지(통폐합)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이다.
이 때문에 강동송파교육지원청은 통폐합 대상 학교를 물색하는 등 계획을 재검토해 얼마 전 서울시교육청 자체 심사를 받았다. 최종 승인 여부는 4월에 있을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지원청 관계자는 "입주가 내년 12월부터고, 개교는 이에 맞춰 2019년 3월에 해야 해서 시간이 굉장히 촉박한 상황"이라며 "4월 교육부 심사에서 빨리 결정이 나야 한다"고 말했다.
전북교육청도 내년부터 1만3천 가구가 입주하는 전주 '에코시티'의 학교 설립 문제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초·중학교 등 학교 용지 8개를 확보했지만 교육부는 우선 소규모 학교들을 통폐합하라며 1곳만 설립을 허가했기 때문이다.
경기교육청 역시 지난해 12월 교육부의 수시2차 중앙투자심사위원회에 제출한 신설 계획 가운데 평택 소사2초, 수원 광교신도시 이의6중 등 15곳이 무더기로 '재검토' 판정을, 용인 아곡중과 아곡2초 등 6곳은 '조건부 승인' 판정을 받았다.
교육청 관계자들은 정부가 학교 신설을 제한하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인구 과밀 지역에까지 동일 잣대를 들이대 수요를 억누르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학교가 없어 원거리로 통학해야 하는 학생, 학부모 민원도 상당하다.
강동송파교육지원청 관계자는 "결국은 학교총량제 때문"이라며 "같은 학군 내에서 하나를 폐지하라는 것인데, 주요 도심에서는 매우 어려운 숙제다. 서울에서는 아직 그런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강남, 서초, 송파 등은 지금도 과밀인데 교육부가 서울 내 다른 지역, 지방이랑 동일 잣대를 들이대니 애로가 상당히 많다"고 토로했다.
중학교 신설을 추진하는 서울 내 다른 지역 교육지원청 관계자도 "도시개발 사업에 맞춰 주거, 교육 환경에 대한 시민 욕구는 커지는데 학교는 총량제에 묶여 있다"며 "교육부는 학생 수가 감소하는 전체 맥락으로만 바라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농어촌, 구도심의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하지 않으면 신도심 학교 신설은 안된다는 게 교육부 입장"이라며 "다른 시도도 이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학교 재배치 계획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북의 경우 소규모 학교를 폐교할 때 학부모, 지역 주민 동의를 다 받도록 하는 조례가 있어서, 폐교를 하고 싶어도 주민 반발 때문에 못한다"면서 "교육부를 설득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전북교육청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대응책 마련에 나섰으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도 지난 1월 총회에서 학교총량제 폐지를 교육부 요구 안건으로 채택했다.
◇ 교육부 "2020년까지 학생 65만명 추가 감소"
하지만 교육부는 '학교총량제'라는 용어부터 잘못 알려졌다고 해명했다. 실제 '학교총량제'라는 말 자체는 교육부가 관련 보도자료나 공문서 등에서 사용한 적은 없는 용어다.
교육부 관계자는 "일률적으로 한곳을 신설하면 한곳을 없애라는 개념이 아니다"라며 "해당 지역의 학생수 변화 추이를 보고 기존 학교들의 재배치 계획을 수립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인구 유입이 예상되는 지역에 학교를 새로 짓는 대신 인구 감소 지역의 학교를 이전시키거나, 인근 학교들로 학생들을 분산 배치, 혹은 초중고 통합, 중고 통합, 남녀학교 통합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재배치 계획을 짜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학교 수를 맞춘다는 '총량제' 개념은 이준식 장관 스스로 인정했다.
이 장관은 14일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이 학교 통폐합 문제와 관련, "사실상 학교총량제이지요?"라고 묻자 "총량제로 하지만 시도별 사정을 최대한 반영해 하고 있다"고 답했다.
교육부는 저출산 여파로 학생수가 계속 줄기 때문에 학교 신설도 무조건 허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초중고 학생수는 총 206만명 감소했고 앞으로 2020년까지 약 65만명이 추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학생수가 300명 이하인 소규모 학교 수도 총 4천212곳에 달한다. 학생수가 60명 이하에 불과한 '초미니' 학교는 2001년 700곳에서 지난해 1천813곳으로 크게 늘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 한 곳을 운영하는데 인건비를 포함해 연간 40억∼5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데 학생 수가 주는 상황에서 아무 대책 없이 신설 허가를 내줄 순 없는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농어촌 지역은 어느 정도 통폐합이 많이 됐고 이제는 도심 공동화가 심각하다"며 "현실을 보고 대응하되, 개교 일정이 촉박한 지역은 조건부 승인을 하는 등 최대한 지역 여건을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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