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사랑에 배신당한 여인의 복수…연극 '메디아'

입력 2017-02-26 11:07  

열정과 사랑에 배신당한 여인의 복수…연극 '메디아'

이혜영 주연…4월2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고대 그리스의 여인 메디아는 남편 이아손을 위해 조국도 배신하고 코린토스로 떠나온다. 그러나 이아손은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의 딸과 결혼하기로 하고 크레온 왕은 후환을 두려워한 나머지 메디아에게 두 명의 아들과 함께 코린토스를 떠나라고 명령한다.

메디아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데다 조국을 배신하고 떠나온 나머지 달리 갈 곳도 없다. 모든 것을 걸고 사랑했던 남편 이아손은 미안해하기는 커녕 않고 이게 다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뻔뻔하게 말한다.

분노와 배신감에 사로잡힌 메디아는 왕녀와 크레온 왕을 죽이고 결국에는 이아손에 대한 복수를 위해 자신이 낳은 아이들마저도 살해한다.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로스와 함께 3대 그리스 비극 극작가로 불리는 에우리피데스의 대표작 '메디아'가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서 공연 중이다.

헝가리 연출가 로버트 알폴디는 2천년 전 고전을 현대적으로 깔끔하게 되살리면서 메디아를 신화 속 이야기가 아닌 오늘날의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스토리의 뼈대가 되는 그리스 신화를 전혀 모르는 관객들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하게 연출하려 했다는 의도는 일단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 이혜영은 이번 무대에서도 예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메디아는 '악녀' 캐릭터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연기한 메디아는 그저 분노에 사로잡혀 앞뒤 가리지 않는 악녀라기보다는 열정과 사랑에 배신당한 나머지 파국으로 치닫는 여인에 더 가깝다.

이혜영은 25일 공연이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자식을 죽인 메디아를 용서할 수는 없지만 (관객들이) 그녀를 이해하도록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16명으로 이뤄진 코러스도 주인공 못지 않게 극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코러스는 공연 처음에 메디아의 사연을 소개하는 역할부터 마지막 무대를 마무리 짓는 역할까지 공연 내내 작품 속에 깊게 개입한다.

여성으로만 구성된 코러스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메디아의 처지를 동정하기도 하지만 자녀를 죽이겠다는 메디아에게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메디아가 처한 상황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쑥덕쑥덕 이야기하는 코러스의 모습은 마치 TV 드라마의 '막장 스토리'를 보면서 한 마디씩 던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또다른 관전포인트는 처음 연극 의상에 도전한 원로 디자이너 진태옥이 만든 의상이다.

초반부 그저 암흑과 같은 분노와 고통에 사로잡힌 메디아는 검은색 벨벳 드레스에 실크 망토를 걸치고 나온다. 이후 잔인한 복수를 계획한 뒤에는 힘없이 처지는 붉은색 저지 드레스로 갈아입는다. 힘없는 드레스는 모든 것을 포기한 뒤 아무런 힘도 남아 있지 않은 메디아를 상징한다.

공연은 4월2일까지.






zitro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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