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학창시절 외국인친구 5명 접촉…"쿵후 영화 좋아해"
김정남, 김정일에 대해 "사적인 자리에서는 자상했던 아버지"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김정남의 학창시절 친구들은 그를 비밀스러우면서도 항상 유쾌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김정남은 모스크바의 프랑스계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에는 친구를 불러 롤렉스시계와 몽블랑 만년필이 가득 찬 방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대개는 겸손하고 자신의 가족 얘기는 거의 하지 않는 평범한 친구였다고 한다.
한 친구는 그가 그림에 소질이 있고 유머가 많아 곧바로 만화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25일(현지시간) 주말판 신문인 매거진 'M'의 '평양의 저주받은 아들' 기사에서 모스크바의 프랑스계 국제학교(초등)부터 제네바의 고교 시절까지 김정남과 학창 시절을 함께 한 5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전했다.
프랑스 브르타뉴지방에 거주하는 '델핀'이라는 이름의 친구는 페이스북을 통해 2007년 김정남과 연락이 닿았다.
그는 김정남과 1980년대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학교를 함께 다녔다. 당시는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목돼 지도자 수업을 받을 때였는데, 김정남은 가족 얘기는 일절 하지 않았고, 고위 외교관 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이 학교의 다른 친구들도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다고 했다. 성도 김이 아닌 '리'(Lee)를 사용했다고 한다.
특히 그는 김정남이 그림을 잘 그렸다고 회고했다.
"재능이 있고 유머가 있어 곧바로 만화계로 진출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가 북한의 권좌에 올랐다면 지금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겠죠."
제네바에 오기 전 김정남은 모스크바에서 프랑스계 초등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모스크바에서 5학년 때 친했다는 한 친구는 김정남의 성을 리(Ri)로 기억했다.
한번은 친구들을 불러 집을 구경시켜줬는데 모스크바 시내 아파트의 한 층을 통째로 쓰고 있었고, 롤렉스 시계와 몽블랑 만년필 등 고가의 제품들이 빼곡히 들어찬 방을 구경시켜주기도 했다고 한다.
한 방에는 비디오테이프가 잔뜩 있었는데 김정남은 특히 쿵후 영화를 좋아했다.
김정남의 집에서는 10여 명의 어른이 김정남과 그의 사촌의 시중을 들었고 운전기사가 있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학교를 오가는 등 다른 학생과 크게 달랐다.
이 친구는 "당시 '얘가 아빠도 없이 모스크바에 와서 뭐하는거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둘은 SNS 덕택에 작년 5월에 조우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김정남은 SNS로 아들 김한솔의 사진을 보내주기도 했고, 자신이 마카오·베이징·싱가포르를 오가며 금융계에서 일한다고 말했다.
김정남의 또 다른 친구는 김정남이 마카오에 있을 때 외국 정보기관, 특히 한국 측과 접촉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고 궁금해한 적이 있다고 했다.
김정남은 당시 이 친구에게 "북한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면서 자신은 정치적 야심이 전혀 없으며 자유로운 삶이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 달 전쯤 김정남을 만났다는 이 친구는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허풍떨지 않았고, 가혹한 독재자들의 아들과 손자라는 사실을 불편하게 여겼다"고 전했다.
르몽드가 인터뷰한 친구들은 김정남을 얘기할 때 신사적이고 잘 눈에 띄지 않으며, 유쾌하고 평범한, 거드름을 피우지 않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아버지 김정일에 대한 김정남의 개인적 평가 부분도 흥미롭다. 학창시절 친구들은 김정남이 "아버지가 공적인 자리에서는 자신과 거리를 뒀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자상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김정남은 또 북한의 개방에 반대한 것은 김정일이 아닌 김정일 주위의 군부들이었으며, 자신이 아버지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했다.
한 친구는 "김정남은 김정일 사후에 자신과 가족의 삶이 위험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항상 프랑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김정남은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아들 김한솔을 만나기 위해 1년에도 몇 차례씩 파리에 들렀다고 한다.
그가 파리에 올 때마다 만났다는 한 친구는 김정남이 온다고 미리 얘기한 적은 한 번도 없고, 항상 도착하고 나서야 자신이 파리에 있다는 것을 알려왔다고 전했다.
르몽드는 김정남 아들 김한솔의 친구와도 접촉했다. 명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르아브르 캠퍼스에서 함께 공부한 한 친구는 김한솔에 대해 "바깥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세상과 북한이 어떻게 다른지 완전히 꿰고 있는 친구였다"면서 "북한은 그에게 추억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르몽드는 접촉한 5명의 친구 모두 북한의 김정은 정권을 자극할 우려 때문에 얼굴을 공개하고 인터뷰하는 것은 거부했다고 전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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