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업성, 취재대응 규칙 시행…"정보공개 막으려는 의도" 비판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비판적인 언론 사이의 갈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에서도 정부부처가 사무실의 문을 걸어 잠그고 기자들의 취재 장소와 대상자를 제한하는 규칙을 시행해 언론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27일 마이니치신문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날부터 기자들이 출입하는 장소와 취재 대상을 규제하는 '취재대응 규칙'을 시행했다.
이에 따르면 업무 시간에 경제산업성 청사 전체 사무실 문은 자동으로 폐쇄돼 직원들만 드나들 수 있게 했으며 취재에 응할 경우 장소는 사무실을 배제한 채 회의실로 제한된다.
취재 요청에 대한 대응은 과장이나 실장급 이상의 관리직만 할 수 있다. 이들이 기자들을 만날 때는 취재 내용과 답변을 메모할 직원과 동석해야 한다. 취재 내용은 사후에 홍보실에 보고해야 한다.
간부들이 자택 주변에서 갑자기 찾아온 기자들의 취재에 대응하는 것도 금지된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취재에 응했을 경우에는 반드시 홍보 담당에 알려야 한다.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일본 언론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동안은 이 부처의 사무실에 드나들면서 자유롭게 취재를 했던데다 취재 대상도 간부에서 하급 직원까지 제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재무성·외무성·후생노동성·국토교통성의 비밀 보호가 중요한 일부 부서에 대해서만 사무실의 문을 닫도록 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번처럼 한 부처가 전체 사무실의 출입을 막고 취재를 제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기자들은 경제산업성의 이 같은 규칙 시행이 정부가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의 유출을 감추려는 목적을 가졌다고 의심하고 있다.
각 신문사와 방송국 기자들이 속한 경제산업성 출입기자단은 경제산업성에 규칙 신설의 경위 설명과 철회를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정보 관리 방식을 바꾸기 위한 것일 뿐 정보 공개를 막으려는 의도는 없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일본 기자들은 취재대응 규칙을 만든 것이 최근 이 부처 내부 문서를 보도한 한 주간지의 기사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주간문춘(週刊文春)이 최근 미일정상회담과 관련해 경제산업성이 작성한 자료를 가지고 쓴 기사를 내보냈는데, 이를 계기로 정부가 기자들의 취재를 제한하려 한다는 것이다.
주간문춘은 잇따른 특종 행진으로 주류 언론에 앞서 이슈를 선점하며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작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측근인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전 경제재생담당상의 대가성 자금 수수 의혹을 보도해 낙마시켰고, '아빠 육아휴직' 신청으로 화제가 됐던 자민당 정치인 미야자키 겐스케(宮崎謙介) 전 중의원 의원의 외도를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교도통신 기자 출신인 도시샤(同志社)대 교수는 "정부부처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국민의 재산이기도 한데 일부 관료가 이를 독점해 밀실에서 다루려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보도기관의 역할이 (정부에) 유리한 것만 보도하는 것이라는 (정부의) 인식이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일본의 언론자유는 2012년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국제언론감시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매년 발표하는 언론자유 순위에서 일본은 2013년 53위, 2014년 59위, 2015년 61위, 2016년 72위 등으로 순위가 점점 하락하고 있다. 작년 순위는 70위였던 한국보다 낮다.
bk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