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국민 46만명] ⑥버려진 40년…'무적자' 서도이씨의 눈물

입력 2017-03-01 07:30   수정 2017-03-02 08:18

[사라진 국민 46만명] ⑥버려진 40년…'무적자' 서도이씨의 눈물

출생 등 아무런 기록없이 떠돌던 노숙자 40여년 만에 '주민등록'

복지혜택·국민 기본권 보장 못받는 '무적자' 더 없는지 파악해야




(수원=연합뉴스) 최종호 기자 = 그의 첫인상은 단정했다. 오랜 거리생활 탓에 행색이 말끔하지는 않았지만, 마냥 더럽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치아가 깨끗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노숙인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좋지 않은 치아 상태다. 그는 술, 담배도 하지 않았다.

10년 넘게 노숙인지원센터를 운영해보니 거리생활을 하면서 좋은 치아를 유지하고 술, 담배를 멀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옆에서 조금만 도움을 줬더라면 그가 거리를 떠돌지 않았을 것 같아 안타까웠다.

안타까움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다. 그는 농아였다. 수화도 할 줄 몰랐다. 의사소통은 불가능했다.

신원부터 확인해야 했다. 누군지 알아야 어떻게 도울지 궁리가 가능하다. 그의 옷가지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경찰의 지문조회도 소득이 없었다. 그는 존재하지만, 그가 존재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무적자'(無籍者)였다.

2008년 여름 그렇게 그를 처음 만났다. 나와 센터 직원들은 우선 그의 신원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그는 40세 정도로 보였고 그는 6월 18일 우리 센터에 왔다. 1968년 6월 18일은 그의 생년월일이 됐다.

그는 물론 글을 쓸 줄 몰랐다. 볼펜을 쥐여주니 멋대로 굴렸다. 그의 볼펜은 의미 없는 흔적을 종이에 남겼다. 얼핏 '서도이'라는 글자로 보였다. 그에게 천천히 서(徐), 길 도(道), 쉬울 이(易) 자를 쓰는 이름을 지어줬다. 우리는 그의 주민등록과 성(姓)·본(本) 창설(성씨와 본관을 부여받는 것)을 신청했다.

추측건대 그의 부모는 형편이 어려웠을 것이다.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 와중에 농아가 태어나니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을 테고 그는 그렇게 버려졌을 게 뻔하다.




버려진 시간이 너무 길어서일까. 그는 우리 센터 노숙인시설에 적응하지 못했다. 혼자 지내온 그는 다른 노숙인들과의 단체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번은 새벽에 일어나서 시설 곳곳을 뛰어다니다가 조용히 하라는 다른 노숙인과 대판 싸웠다. 그는 하던 대로 했을 뿐이다. 그는 자신과 싸운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다.

결국 그는 얼마 안 가 사라졌다. 그러더니 3개월 만에 나타나 잠시 머무르다가 또 훌쩍 떠났다. 그러기를 10년째 반복하고 있다. 보다 양질의 환경을 제공해주고자 청각언어장애인 거주시설에도 보냈었지만, 적응 실패로 한 달 만에 퇴소했다. 그에게는 거추장스럽기만 한 우리의 개념이 한둘이 아닐 테지만 주거, 거주, 정착 따위는 특히 그래 보인다.

어느 날 전라도의 한 보육원에서 그를 데리고 있다는 전화가 왔다. 혹시 몰라 그의 주머니에 넣어둔 센터 전화번호를 보고 연락한 모양이다. 이후에도 그 보육원에서 같은 전화를 몇 번 받았다.우리는 어렸을 때 그곳에서 자란 그가 이따금 자신이 자란 곳을 찾는 것으로 생각한다. 오랜 기간 그 보육원에서 원생 관리를 하던 담당자가 사망해 확인할 길은 없다.

그에게 수화와 글을 가르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수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가 거부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가 수화와 글을 알지 못해 불편한 건 그가 아닌 우리인 것 같다.

그는 배가 고프면 손으로 젓가락질하는 시늉을 하고 입맛을 다신다. 몸이 아프면 아픈 부위에 손을 대고 인상을 찡그린다. 수틀린 일이 생기면 "아"하고 큰소리를 내며 과장된 몸짓을 한다.

2012년에는 광주광역시의 한 정신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길거리 전봇대에 자신을 끈으로 묶은 채 발견돼 이송됐다고 한다. 아마 뭔가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그런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찾아가 보니 약을 얼마나 먹었는지 축 늘어져 있다. 나를 발견하고는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처음으로 내 옷깃을 잡아끌었다. 이곳에서 꺼내달라는 뜻이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그의 의사 표현이 대개 이 정도인데 비해 그는 다른 사람의 표정을 잘 읽었다. 누군가 자신을 무시하거나 귀찮아하는 표정을 지으면 금방 눈치채고 자리를 피한다. 거리에서 익힌 생존법인듯하다.

그는 병원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그가 가끔 센터를 찾으면 건강검진을 받게 하러 병원에 데려가는데 자기 몸을 챙겨준다는 사실을 알고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 병원 가는 길에는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의 주민등록증은 2010년 2월에 나왔다. 태어난 지 약 40년 만에 주민, 국민 서도이(49)씨가 됐다. 그제야 서씨 앞으로 기초생활수급비가 나왔다.

지금도 나는 서씨와 오직 눈빛으로 대화한다. 일반 노숙인에게도 쉽지 않은 거리가 농아인 그에게 얼마나 가혹했을지 나는 모른다. 서씨의 속이 얼마나 멍들었는지, 그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눈빛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생사조차 모르는 거주불명자가 2017년 현재 46만명이라고 한다. 서씨 같은 무적자는 그 수치에도 끼지 못한다. 또 다른 서씨가 얼마나 더 있는지도 나는 알지 못한다.



<※이 기사는 경기도 수원의 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원센터를 운영하는 김대술(58) 성공회 신부의 설명을 토대로 과거 무적자(無籍者) 신분으로 노숙을 하다가 다시서기센터의 도움으로 40여년 만에 신원을 찾은 서도이(49)씨의 사연을 김 신부의 시점으로 소개한 것입니다.>

zorb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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