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집에 난 불로 80대 남편이 질식해 숨졌지만 치매에 걸린 아내는 신고도 하지 못한 채 숨진 남편에게 베개를 받쳐주며 밤을 지새우다가 발견됐다.
28일 오전 8시 38분께 광주 북구의 한 주택에서 발생한 화재로 집주인 A(82)씨가 숨졌다는 신고가 112상황실에 접수됐다.
전날 오후 6시 30분께 시작된 불은 음식물을 올려놓은 가스레인지에서 시작돼 집 일부를 태운 뒤 저절로 꺼졌다.
이른 아침 부모 집을 방문한 A씨의 아들은 어머니 B(75)씨가 얼굴에 그을음을 묻힌 채 나오며 "집에 불이 났었다"고 말하자 집 안으로 들어가 숨진 아버지를 발견했다.
조사결과 B씨가 전날 가스레인지에 음식물을 올려놓고 외출한 사이 불이 난 것으로 드러났다.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한 A씨는 안방에 머물다가 집안에 연기가 가득 차 빠져나오려다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집안 창문이 깨져 있던 정황으로 미뤄 A씨가 연기를 빼내기 위해 창문을 깼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불이 더 번지지 않고 저절로 꺼지고, 깨진 창문으로 연기가 다 빠진 후 B씨는 외출을 마치고 돌아왔다.
B씨는 간헐적 치매에 걸린 탓에 신고도 하지 못한 채 불이 난 집안에 들어가 숨진 남편과 긴 밤을 홀로 지새웠다.
화재로 어질러진 집안을 치우고 남편이 숨진 사실도 깨닫지 못한 채 옆에 누워 베개까지 받혀준 것으로 전해졌다.
A씨의 아들은 거의 매일 부모의 집을 찾아 난방을 살피는 등 A씨 부부를 보살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B씨가 치매 증상으로 평소에도 요리하면서 자주 음식물을 태웠다"는 가족의 진술을 토대로 실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화재원인과 A씨의 사망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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