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번역에 오·탈자로 4년 전 지적 나왔지만 아직 조치 없어
전문가 "3·1운동 당시 미주동포가 번역…철거보다 별도 안내문"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종로 탑골공원 내 기미독립선언서(己未獨立宣言書) 비문(碑文) 영문 번역본이 오역 논란에도 개선되지 않고 방치돼있다.
1일 연합뉴스 취재 결과 탑골공원 독립선언서 영문 번역본에는 어색한 번역과 오·탈자가 많고, 심한 경우 뜻이 왜곡된 문장까지 있다.
번역본 넷째 문단 '슬프다! 오래전부터의 억울을 떨쳐 펴려면'에서 '슬프다'가 'Assuredly'로 번역돼 있는데, 'Assuredly'는 영어에서 '기필코'라는 뜻이다.
외세 침략에 따른 민족의 비통함을 드러내려면 'Assuredly'는 부적절하고, 'Alas'나 'Woe to us' 등 감정을 살리는 표현을 썼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영문본 중간에선 '사람'을 'insect'(곤충)라고 잘못 번역한 부분도 발견됐다. 'sincere'를 'sincero'라고 쓴 오자도 있었다.
연합뉴스가 2013년 영문학자들에게 의뢰해 문제점을 찾아냈지만 4년이 지나도록 개선되지 않았다.
기미독립선언서 원문은 시인이자 당대 최고 문장가이던 육당(六堂) 최남선 선생이 쓴 명문장이다.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인 이희승 박사가 쓴 현대어 풀이본 역시 흠 잡을 데 없는 명문으로 평가된다.
이 영문본은 1919년 미주 한인 동포들이 결성한 독립운동 단체 '대한국민회' 한 회원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국민회 회원 후손이 기증한 원본이 천안 독립기념관에 보관돼있다.
전문가들은 오역과 오·탈자가 있더라도 100년 전 쓰던 영어라는 점과 동포 독립운동가가 번역했다는 가치 등을 고려해, 현재 상태를 유지하면서 배경을 설명하는 안내문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미주 한인 동포의 작품이라는 사료적 가치가 충분하다는 점은 인정되니 철거하지 말자는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 정체성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서울 도심에 그대로 두는 것은 부적절하므로 배경을 알리는 안내를 추가하자는 뜻이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은 "비문을 새로 설치하기보다는 별도 안내문으로 오·탈자가 난 이유와 제대로 된 번역을 제공하는 것이 옳다"면서 "외국인들이 더 재미있게 선언서를 읽도록 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관리 기관인 종로구청 관계자는 "독립기념관, 문화재청, 광복회 등 관련 기관·협회 자문을 구해서 안내 조형물을 세울지 새로 설치할지 종합 검토를 해보겠다"고 밝혔다.
hy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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