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 더는 손 벌리지 말란 얘기"…"삼성, 걸맞지 않게 후진적 중앙집권체제"
(서울=연합뉴스) 재계팀 = "삼성이 대관 조직을 폐지하고 10억원 이상 기부금에 대해 이사회 의결을 거치게 한 것은 결국 '앞으로 삼성에 구질구질한 민원을 넣지 말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우리도 손 벌리지 않을 테니 너희도 삼성에 더이상 손 벌리지 말라'는 거죠. '재계의 김영란법'이 발효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삼성이 28일 '그룹 해체'라고 할 수 있는 강도 높은 경영쇄신안을 발표하자 각 대기업에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간 재계를 선도해온 삼성의 이날 경영쇄신안에 대해 여러 해석을 내놓으며 파장을 점치는 분위기였다.
우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은 삼성을 통해 여러 이권을 챙긴 이들에게도 '과거와 같은 관계'는 끝났다고 통보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해석이 눈길을 끌었다.
4대 그룹 관계자는 "삼성은 그간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재벌 해체, 제왕적 경영 중단 등의 요구를 받아왔다"며 "이에 궁지에 몰린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알겠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하겠다.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 같다"고 해석했다.
그는 "삼성이 대관업무를 중단하게 되면 당장 삼성에 각종 민원을 넣어온 정치권 등이 상당히 불편해질 수 있다"며 "그룹이 해체된 마당이니 그룹이라는 우산 아래 외부에 후원해온 각종 명목의 지원금도 많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 1등 기업이 이 같은 각오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선 만큼 '재계의 김영란법'이 발효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명성에 걸맞지 않게 후진적인 경영 시스템을 운영하다가 이번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삼성을 제외한 대부분의 그룹은 오래전에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며 "하지만 삼성 계열사는 아직 순환출자 고리로 연결돼 있고 현재 다른 기업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중앙집권식 컨트롤타워를 가동하다가 문제가 생겼다"고 밝혔다.
이어 "다른 그룹의 경우 주요 경영 활동의 대부분을 이미 각 계열사 이사회로 넘겼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이유로 삼성의 이번 쇄신안 발표가 실제로 다른 대기업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예를 들어 현대차나 GS[078930]는 상시 유지하는 컨트롤타워 조직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현대차[005380]는 그룹 차원에서 사안을 조율할 필요가 있을 때 자동차를 중심으로 각 계열사 담당 부문이 모여 협의를 진행한다.
GS그룹은 지주회사 ㈜GS가 계열사 지분을 갖고 주주로서 CEO와 이사 선임 등에 관여하지만 사업 하나하나에 대한 결정은 내리지 않는다. 그룹 차원의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면 사장단회의에서 다뤄진다.
SK 수펙스추구협의회, 롯데 경영혁신실, 포스코[005490] 가치경영실 등도 삼성 미전실에 비하면 역할과 책임 범위가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대기업의 임원은 "삼성의 경영쇄신안 발표가 다른 기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이 임원은 "삼성은 그간 그룹의 중요 사안을 조율할 때 미전실에 크게 의존해왔는데 갑자기 컨트롤타워 공백 상태를 맞게 됨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계열사 간 중복투자 같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기업의 팀장급 간부는 삼성의 미전실 해체 선언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삼성은 이전에도 전략기획실 해체 등 비슷한 발표를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달라진 게 크게 없었다"며 "어차피 문제는 미전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오너가 소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시스템에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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