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외교면책· 치외법권 탓에 수사 교착상태" 전망
말레이 내부서 "북한에 우호적이던 정부가 문제" 비난도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김정남 암살사건의 배후를 규명하는 말레이시아 당국의 수사가 답보하자 슬슬 쓴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그간 말레이 정부의 태도가 불상사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2일 현지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보도했다.
비난 골자는 말레이 정부가 북한과의 우호적 관계로 북한 공작원들의 활동을 방조한 데다가 이들이 법 집행을 회피할 은신처까지 마련해준 꼴이 됐다는 주장이다.
신문에 따르면 현재 말레이의 사건 수사는 핵심 용의자인 북한 대사관 2등 서기관 현광성의 면책특권, 항공사 직원 김욱일이 숨어든 북한 대사관의 치외법권적 지위 때문에 답보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수사 없이는 북한이 김정남 암살의 배후라는 정황이 있음에도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현광성은 이번 암살작전을 막후에서 조율한 역할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욱일은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달아난 다른 북한 용의자 4명을 도운 혐의다.
외교관 신분인 현광성은 '외교관계에 관한 빈협약'(1961)에 따라 민·형사상 기소를 받지 않는 면책특권을 누린다.
따라서 현광성의 면책특권을 북한이 스스로 해제하지 않는 한 말레이 경찰은 그를 체포해 조사할 수 없다.
김욱일도 대사관이 주재국인 말레이시아의 관할권이 미치지 않는 치외법권 지역에 숨은 터라 말레이 경찰이 신병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성폭행 혐의를 받는 위키리크스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가 스웨덴의 체포영장 집행을 피하려고 영국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 5년간 은신한 것과 같은 사례다.
NYT는 이런 상황 때문에 말레이 당국의 수사가 교착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만약 말레이 정부가 북한과 외교관계를 단절해 북한 대사관이 폐쇄되면 이들을 체포할 길이 생기지만 이 또한 한계가 있다.
외교관인 현광성을 '외교상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선언해 추방하는 것이 말레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 자문관인 말레이시아 변호사 시바난탄 니시야나담은 "대사관은 파견국의 주권이 미치는 영토로 간주돼 주재국은 허가 없이 타국 대사관 영내에 진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말레이 정부가 북한 대사관에 강제 진입한다면) 타국의 영토에 허가 없이 들어가는 것과 같아 외교 협정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배후수사 부진을 둘러싸고 말레이에서는 애초 정부가 북한 대사관의 존치를 허용해 이런 국익침해가 이뤄졌다는 비난까지 나왔다.
다수 서방 국가에서 말레이 대사를 지낸 데니스 이그네이셔스는 말레이가 북한을 다루는 방식이 "아주 순진하고 사기당하기 좋았다"고 비난했다.
이그네이셔스는 말레이 정부가 즉각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격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불량국가 북한이 한 번도 자국 대사관을 먼저 개방한 적이 없다며 강철 주말레이 북한 대사 추방,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비자 취소, 평양 주재 말레이 대사관 폐쇄 등의 후속조치를 제안했다.
그는 "북한이 이런 은밀한 암살작전을 수행하고, 유엔 제재를 피해 불법 외화벌이를 할 수 있는 장소로 말레이시아를 택했다는 점이 문제"라며 "왜 말레이 정부가 이를 허용했는지 진정한 의문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김정남은 지난달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베트남, 인도네시아 여성들로부터 얼굴에 VX 신경작용제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말레이 당국과 국제사회는 배후에 북한 정권이 있다고 보고 대량살상무기로 금지된 화학무기 VX를 사용했다는 점에도 심각한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viv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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