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베트남을 방문 중인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가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군이 남긴 상처를 보듬는 행보를 했다.
아키히토 일왕과 미치코(美智子) 왕비는 2일 하노이 셰러턴호텔에서 2차 대전 참전 일본 군인들이 베트남에 남겨둔 현지인 가족들을 만나 위로했다. 생존 중인 16가족이 이날 초청됐다.
2차 대전 당시 베트남에 진주했던 일본군 가운데 600∼700명이 1945년 종전 이후에 남아 프랑스를 상대로 한 베트남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일부 일본 군인은 베트남 여성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1954년 제네바협정에 따라 프랑스의 베트남 철수와 베트남의 남북 분단이 이뤄지면서 이산가족이 됐다. 일본 군인들이 본국으로 송환됐지만, 베트남 부인과 자녀의 대동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트남에 남겨진 가족들은 일본이나 베트남 정부의 아무런 지원도 없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눈총과 차별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자국으로 돌아간 일본 군인들은 다시 가정을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1973년 일본과 베트남이 수교했지만, 베트남이 1980년대 후반 대외 개방 정책을 펴기 시작한 이후에야 이들 일본 군인과 베트남 가족들 간에 연락이 이따금 이뤄졌다.
응우옌 티 쑤언(92) 할머니는 남편이 일본으로 돌아간 지 6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죽은 줄로 생각하고 제사를 지냈다고 최근 AP 통신에 말했다.
쑤언 할머니는 농사일하며 세 아이를 홀로 키웠다. 자신은 물론 아이들도 놀림을 받으며 살았다.
쑤언 할머니의 큰아들은 "사람들이 나를 일본인 아들, 파시스트 아들이라고 부르고 차별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나아졌다"고 말했다.
2005년 쑤언 할머니는 남편이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듬해 베트남에서 재회했다. 헤어진 지 52년 만이었다. 일본인 부인과 결혼한 쑤언 할머니의 남편은 당시 뇌졸중 후유증으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었으며 그 후 몇 년 뒤에 숨졌다.
아키히토 일왕의 공보비서 다카시마 하쓰히사는 "일왕 부부가 일본 군인들이 남겨둔 베트남 가족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며 연민과 위로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들을 만나기를 희망했다고 말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2005년 사이판, 2015년 팔라우, 2016년 필리핀을 방문해 전몰자를 위령했다. 이번 베트남 방문도 전후 70주년 위령 행보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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