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현대판 음서제'로 비판받아온 단체협약 상 노조의 '고용세습' 조항이 여전히 많은 기업들에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장기근속자, 정년퇴직자, 업무 중 다치거나 숨진 근로자 등의 자녀에게 채용상 특혜를 부여하는 조항이다. 고용노동부는 작년 3월 100인 이상 사업장 2천769곳의 단체협약을 실태 조사해 694곳의 단체협약에 고용세습 조항이 있는 것을 확인, 시정명령 또는 자율개선 조치를 내렸다. 일부 사업장은 복수노조여서 단체협약 수는 모두 722개였다. 하지만 지난 1월 말까지 '고용세습' 조항을 삭제하지 않은 경우가 46.3%인 334개로 집계됐다. 특히 현대차, 기아차, 한국GM, 롯데백화점,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쌍용자동차 등 상당수 대기업들이 이 조항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높은 취업 문턱에 절망감을 느끼는 청년들로서는 속 터질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용세습은 당연히 사라져야 할 악습이다. 옳지 않다는 판단은 이미 법원에서도 내려졌다. 2013년 5월 울산지법은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전 현대자동차 노조원 유족이 회사를 상대로 낸 고용의무이행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조합원 사망 시 유족을 고용하도록 한 현대차 단협 조항은 사실상 일자리를 물려주는 결과를 낳아 우리 사회의 정의 관념에 배치된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여론의 압력이 커지자 지난해 대대적인 실태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노동부는 이렇게 심각한 상황을 확인하고도 극히 일부 사업장에만 시정명령을 내렸다. 자율적인 개선을 먼저 유도하는 것이 기본 방침이었다고 하나 재조사 결과를 보면 미온적인 대처였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요즘 청년층의 취업 환경은 사상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연간 청년 실업률은 9.8%로 역대 최고였다. 실업자 통계에 잡히지 않는 취업 준비생이나 구직단념자까지 포함하면 실제 청년 실업률이 30%를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청년 고용보조지표의 현황과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청년층의 체감 실업률을 34.2%로 추정했다. 취업을 아예 포기하는 청년들이 속출하면서 올해 1월 청년층 비경제 활동인구는 510만4천 명으로 1년 전보다 0.1% 늘어나 3년5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정부가 청년층 취업난을 일거에 해소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노조의 '고용세습'처럼 불공정하고 비윤리적인 악습은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주무부처인 노동부는 이런 폐단을 바로 잡기 위해 마땅히 정책 역량을 모아야 한다. 현행 법은 고용세습 조항에 대한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사업장에 최고 500만 원의 벌금형을 내릴 수 있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인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은 최근 고용세습 조항을 유지하는 사업장 명단을 공개하고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발의했다. 차제에 실질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만큼 관련 법제가 대폭 보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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