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이 고대하는 '석대법'은…세계 4대 액체항만 도약 열쇠

입력 2017-03-04 07:30  

울산이 고대하는 '석대법'은…세계 4대 액체항만 도약 열쇠

울산항에 2천840만 배럴 저장시설 2025년 구축…석유거래·금융 등 연관산업 발전 기대

법 개정되면 석유제품 섞어 새 제품 제조 가능…"규제완화로 국제적 투자 활성화"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아, 석대법이 또…'

울산 산업계의 탄식이 길어지고 있다. 석대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듣기에 생소한 '석대법'은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의 줄임말로, 이 법의 개정은 동북아 오일허브 성공을 위한 대전제로 꼽힌다.

울산항을 세계 4대 액체항만으로 도약시키려는 울산시와 산업계는 이 법 개정에 목을 매고 있지만, 개정안 처리는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무산됐다.

오일허브는 무엇이며 석대법 개정으로 어떤 영향이 있는지, 이 법 개정은 왜 미뤄지는지 등을 소개한다.


◇ 세계 4대 액체항만 도약…산업 위상 높일 오일허브

울산항 동북아 오일허브 구축은 2025년까지 2조2천260억원을 들여 울산항 90만7천㎡ 부지에 2천840만 배럴 규모의 석유저장시설, 9개 선석과 1개 부이(Buoy, 해상원유이송시설) 등 접안시설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이를 통해 울산항에서 석유제품 저장·중개·거래 등의 부가가치를 창출해 석유 물류 거점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2010년 착공해 2019년 완료되는 1단계(북항)가 저장시설 990만 배럴, 6개 선석 규모다. 2단계(남항)는 2025년까지 1천850만 배럴의 저장시설과 4개 선석 건설이 예정돼 있다.

오일허브가 구축되면 석유를 중심으로 다양한 석유제품을 대규모로 저장하는 동시에 혼합제조와 국제적 거래를 촉진,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걸프연안, 유럽 ARA(Antwerp, Rotterdam, Amsterdam), 싱가포르에 더해 울산이 세계 4대 액체화물 항만으로 이름을 올릴 것이라는 낙관도 있다.

2009년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실시한 예비타당성 조사에 따르면 울산항 오일허브 사업의 생산유발효과는 4조4천447억원, 고용유발효과는 2만2천138명에 달한다.

단순히 석유 저장·거래 활성화뿐 아니라 석유거래를 비롯해 물류, 금융 등 연계 산업의 발전을 꾀하는 효과도 있다.

특히 울산에 국제석유거래소가 설립되면 국제 금융거래와 각종 파생상품 거래가 이뤄져 석유 물류와 금융이 융합된 새로운 산업 창출이 가능하다.

이는 그동안 석유 저장이나 정유 기능에 머물던 우리나라가 석유 중개수출과 거래 기능을 갖춘 국가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가져다준다.

이 밖에 2천840만 배럴 규모의 석유 저장시설은 우리나라가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유류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국가적 차원의 에너지 안보체계 강화에도 기여할 전망이다. 석유수급의 안정은 물론 비축유 확보 효과가 있는 것이다.


◇ '석유제품 섞어 새 제품 생산'…오일허브 구축 촉진제 기대

여러 장밋빛 전망에도 그동안 오일허브 사업은 순탄치 못했다.

그 배경으로 작용한 요인 중에서도 석대법 개정안 처리 지연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가 2014년 12월 발의한 석대법 개정안의 핵심은 국제석유거래업을 신설해 석유제품 혼합제조와 거래를 허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종합보세구역에서 석유제품을 혼합해 새로운 제품을 제조하고, 해당 제품을 거래하는 사업을 '국제석유거래업'으로 지정해 보장하는 것이다.

지금은 석유정제업자(정유사)들만 대규모 정제시설에 원유를 투입, 휘발유·등유·경유·나프타 등의 석유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이 방식은 대량의 석유제품을 일괄 생산하는 장점이 있지만, 특정 유종의 제품을 한정적으로 생산하기는 어렵다.

석대법을 개정하면 정제시설보다는 상대적으로 간단한 블렌딩(blending·석유제품 혼합) 장비를 이용해 저장시설의 석유제품을 혼합, 수요에 맞춰 다양한 유종과 성상의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천원짜리 나프타 1ℓ와 500원짜리 MTBE(올레핀과 메탄올로 만든 첨가제) 0.5ℓ를 섞어 휘발유 1.5ℓ를 만들면, 그 가격은 원가(1천500원)의 1.5배에 달하는 2천250원을 받는 식이다.

이처럼 유연한 석유제품 제조 환경만 갖춘다면 지금은 단순 저장·보관 기능만 하는 탱크터미널의 사업 영역 확장과 수익성 개선뿐 아니라, 세계적인 석유 트레이더의 사업 참여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대형 정유업체가 독점하는 석유제품 공급체계가 무너져 석유제품 가격이 내려가고, 소비자 선택권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 야당 우려로 개정안 처리 지연…3월 처리도 불투명

그동안 야권을 중심으로 법률 개정에 신중한 태도를 견지, 개정안 처리가 지연됐다.

야권은 동북아 석유수요 불확실성 증가, 저장시설 과잉 투자, 사업주체인 한국석유공사의 재무건전성 악화, 혼합·제조한 석유제품의 국내 유입 등을 우려한다.

실제로 여수에는 민간자본 5천170억원이 투입돼 2013년 총 820만 배럴 규모의 저장시설이 완공됐으나, 석유거래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한계 등으로 실적이 부진했다.

여기에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나 국회 예산정책처 등이 오일허브 규모 축소나 사업 시기 연장 필요성을 제기하는 보고서를 잇달아 발표, 법 개정에 악재로 작용했다.

결국 석대법 개정안은 2014년 12월 국회에 제출됐으나 19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법안소위심사에서 3차례 심사 보류, 1차례 미심의되는 우여곡절 끝에 폐기된 바 있다. 20대 국회에서 이채익(울산 남갑) 자유한국당 의원이 다시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지난달 15일 국회 산자위와 이달 2일 법제사법위원회를 잇따라 통과했으나, 결국 본회의에서 다시 발목이 잡혔다.

더불어민주당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 개정안' 처리와 석대법 처리를 연계하자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개정안은 '원내 4당이 합의 처리한다'는 꼬리표가 붙은 채 미뤄졌고, 정부와 자유한국당이 상생법에 반대하고 있어 또다시 표류할 가능성도 있다.

강종열 울산항만공사 사장은 4일 "동북아 오일허브는 울산 차원을 넘어 해양강국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린 국가적 과제다"면서 "석대법 개정이 규제 완화와 투자자 유치로 이어져 오일허브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hk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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