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서정연 "김은숙 작가 몰라 '태후' 거절할 뻔"(종합)

입력 2017-03-06 15:34   수정 2017-03-06 23:12

[단독]서정연 "김은숙 작가 몰라 '태후' 거절할 뻔"(종합)

'피고인' '김과장' 종횡무진…힘겨운 연극인생 후 41살 TV행

평생 두번째 인터뷰한 수줍은 배우 "나는 너무 부족한 사람"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고개를 못 들 정도로 수줍어하는 배우를 오랜만에 만났다.

1시간 동안 "인터뷰하기가 너무 겁난다"는 말을 열번은 했다.

"너무 쑥스럽고 말도 제대로 못 하겠다"는 그는 인터뷰 전날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급기야 바디크림 통을 쏟았단다.

그는 "부디 그게 액땜을 하는 거였길 빌었다"며 웃었다. 혹시 인터뷰하다 '사고'칠까 봐 걱정했다는 거였다.

'태양의 후예'의 그 당찬 간호사 하자애가 맞나? '김과장'의 야심찬 조상무가 맞나? 놀라고 또 놀랐다.





배우 서정연. 1971년생으로 올해 46세다.

연극판에서 20여년 잔뼈가 굵었지만 TV에서는 최근 2년 사이 부상한 '새로운 얼굴'이다.

평생 인터뷰가 두번째라는 그를 최근 광화문에서 만났다. 서정연을 소개한다.


◇연극인생 20여년…생활고에 연기 포기하기도

1996년 뒤늦게 연기를 시작했다.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지만 연기할 때만큼은 서정연이 아닌, 다른 인물이 된다는 것이 너무 좋았단다.

"초등학교 때부터 베개를 업고 혼자 중얼중얼 연기했어요. 하지만 시작은 늦었죠. 스물다섯에 연우무대에서 시작했어요. 연기할 때면 내가 아닌 극중 인물로 봐주시니까 편해요. 그래도 성격이 이래서 적응 기간이 길었어요. 동료가 '몇년 후 널 대학로에서 못 볼 것 같다'고까지 했으니까요. 공연 날짜가 다가오면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매번 했어요. 어디 한군데 부러지길 바랐을 정도예요. 부상하면 공연 안 해도 되니까."

연극배우의 삶이란 소수 몇을 제외하고는 늘 생활고와의 싸움이다. 열정 하나로 버티는 것도 20대 정도지, 많은 배우가 30~40대를 거치면서 포기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든다.





"아르바이트를 꾸준히 했죠. 백화점, 동대문 시장에서 판매 아르바이트를 했고, 의대생을 대상으로 하는 표준환자 역할도 많이 했어요. 생활은 '초절약'이죠. 하지만 늘어나는 빚을 감당할 수 없었어요. 큰 빚은 아니었지만 큰 짐이었죠. 연극을 계속하는 게 사치스러운 일인 것 같아 그만뒀어요. 그게 서른아홉이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월급을 받았어요. 걱정은 사라졌지만 행복하지 않더라고요. 집과 회사를 오가는 일상뿐이었어요. 연극할 때는 행복했고 만족감이 컸는데 그런 게 없었어요. 결국 1년 만에 연극판으로 돌아왔어요. 카드 돌려막기를 하면서 파산할 때까지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한씨연대기' '터미널-러브 소 스윗' 등이 그의 연극 대표작이다.





◇ 안판석 PD와의 만남…'풍문으로 들었소' 이후 빚 청산

반전은 2012년에 왔다. 드라마 '아내의 자격'이 연극배우들을 대상으로 대거 오디션을 진행한 것. 안판석 PD에게 발탁된 그는 TV라는 다른 세상으로 걸어들어왔다. 그는 '아내의 자격'을 시작으로 '밀회'와 '풍문으로 들었소'까지 세 작품 연속 안 PD와 작업했다.

'아내의 자격'에서는 대치동 엄마로 10회 정도 단역 출연했고, '밀회'에서는 조선족 엘리트 출신 식당 아줌마로 2회 나왔다. 그리고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재벌가 사모님(유호정 분)의 깐깐하고 새침한 비서 역을 맡아 조연으로 올라섰다.





"안 PD님은 은인이죠. 너무 감사한 분입니다. 제가 '풍문으로 들었소'를 끝내고 모든 빚을 갚았어요.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 싶더라고요. '나 빚 없는 여자야'라며 막 자랑하고 다녔어요.(웃음) 안 PD님이 절 두번 살려주셨어요. 사실 '풍문으로 들었소'를 포기하고 싶었거든요. 그 직전 '일리 있는 사랑'이라는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TV는 이제 못하겠다 싶었거든요. 근데 '풍문으로 들었소' 출연을 안 PD님과 이미 약속한 상태라 그걸 저버릴 수는 없었어요"







이후는 일사천리다. '새로운 얼굴'에 늘 목마른 드라마계가 여러 얼굴을 가진 서정연을 놓칠 리가 없었다.

'그녀는 예뻤다' '풍선껌' '태양의 후예' '끝에서 두번째 사랑' '맨몸의 소방관'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캐스팅됐다. 이중 '대박'이 난 '태양의 후예'는 서정연에게 또다른 큰 기회가 됐다. 그가 이승준과 보여준 송닥-하자애 커플의 앙상블은 드라마에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런데 그는 하마터면 '태양의 후예'를 '거절'할 뻔했다.

"드라마를 안 봐서 김은숙 작가님을 잘 몰랐어요. 대본을 받고는 '생각해보겠다'고 했어요. 김 작가님 작품은 서로 하겠다고 달려드는데 말이죠.(웃음) 그런데 이틀 고민하면서 찾아보니 제가 즐겨본 '시크릿 가든'의 그 작가님이더라고요. 운이 정말 좋았죠."



"지금도 카메라 울렁증이 있지만 '태후'를 찍을 때는 여전히 카메라 위치도 모르고 어리바리한 상태였다"는 그는 "다행히 사전제작 드라마라 길게 찍으니 적응이 됐다"며 웃었다.

또 "상대역인 승준이와 연극하면서 친했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 '피고인' '김과장' '품위있는 그녀' 세 작품 동시 촬영

급기야 그는 현재 드라마 세 작품을 동시 촬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쏟아진 것이다.

현재 SBS TV 월화극 '피고인'에서는 박정우(지성)를 돕는 정신과의사 김선화, KBS 2TV 수목극 '김과장'에서는 김과장(남궁민)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조상무를 연기하고 있다. 사전제작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도 촬영했다.

"거절을 못 해서 세 작품을 동시에 하게 됐는데 다시는 이렇게 안할꺼에요. 부담스럽고, 세 작품에 다 미안한 상황이 발생하니까요. 그나마 '피고인'과 '김과장' 모두 잘돼서 천만다행입니다. 하나만 잘됐으면 너무 미안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저는 그래도 작품마다 헤어스타일과 캐릭터가 다르니, 같은 배우가 나오는지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봐요?(웃음)"

서정연은 "나는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라며 "연기는 하면 할수록 너무 어렵다. 계속 노력하는 배우가 되겠다"고 말했다.







prett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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