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김상훈 황철환 특파원 = 김정남 암살사건을 둘러싼 말레이시아와 북한의 갈등이 양국 간 '국교 단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4일 김정남 암살사건에 대한 현지 경찰 수사를 비판하고 말레이가 한국 등 적대 세력과 야합해 북한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는 발언을 한 자국 주재 강철 북한대사를 추방하기로 했다.
이번 조치는 자히드 하미디 말레이 부총리가 지난 4일 북한과의 비자면제협정 파기를 선언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나온 초강력 대응이다.
말레이 당국의 이런 대응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 주권 지역에서 독살된 것이 분명한데도, 북한이 수사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일관하는 데 따른 것이다.
북한은 김정남 암살사건이 발생한 직후부터 작심한 듯 말레이 당국의 시신 부검 진행과 수사결과 발표를 비판하고, 말레이와 한국이 야합해 자신들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을 이어왔다.
강 대사가 2차례 기자회견과 1차례 성명을 통해 이런 주장을 폈고, 지난달 28일 북한 대표단을 이끌고 현지에 도착한 리동일 전 유엔주재 차석대사도 2차례 회견을 통해 같은 발언을 되풀이해왔다.
말레이 정부도 이런 북한에 대해 도발을 계속하면 상응하는 조처를 하겠다며 강경한 대응을 예고했다.
자국에서 대량파괴무기로 전환될 수 있는 맹독성 신경작용제 VX가 동원된 암살 범죄가 발생한 데다, 범죄의 배후로 추정되는 북한의 주권침해 발언을 묵인하면 국제적인 망신을 사는 것은 물론 신뢰도 저하도 피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올해 조기총선이라는 중요 정치행사를 앞두고 주권침해를 묵인하면 북한에 '저자세 외교'를 했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질 것을 우려한 부분도 있다.
말레이는 이미 지난달 20일 모하맛 니잔 평양주재 자국 대사를 불러들인 바 있다. 따라서 강 대사가 추방되면 양국 간의 외교 소통 채널이 사실상 마비되는 셈이다.
더욱이 김정남 암살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는 것을 피하고자 말레이 당국의 수사결과 및 후속조치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북한과, 이를 묵과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이미지 타격을 피하려는 말레이시아의 갈등은 갈수록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양국 간의 외교단절 상황이 닥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말레이 외무부도 이날 성명에서 "강 대사 추방은 말레이시아 정부가 추진하는 북한과의 관계 재검토 절차의 일부로 양국 간 비자면제협정 파기에 이어 나왔다"며 앞으로도 '외교관계 단절'을 포함해 북한을 상대로 추가적인 조치가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한 현지 소식통은 "화학무기로 분류되는 VX가 동원된 김정남 암살에 대한 국제사회의 따가운 비판 여론을 피하고자 북한은 말레이의 수사결과 등을 지속해서 부정해야 하며 이는 양국 간의 지속적인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말레이시아로서는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과의 교류를 통해 얻을 게 별로 없으므로 북한과의 외교관계 단절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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