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인 건축가 다룬 신간 '경성의 건축가들'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지금의 고려대(옛 보성전문학교) 도서관을 설계한 사람은 건축가 박동진(1899~1981)이다. 그는 3·1 운동에 연루된 일로 만주를 떠돌다 귀국했다. 1937년 도서관 설계 당시 민족의식을 운운하는 그에게 건축주인 김성수가 기술자가 도면이나 그리지, 무슨 인생관이냐고 면박을 줬고, 이에 발끈한 박동진은 "기술자에게도 조국이 있고, 민족이 있다"고 받아쳐 사과를 받아냈다.
건축가를 신식 기술자 정도로 대했던 당시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는 일화다. 친일 행위로 해방 직후 반민특위에 회부된 건축주들은 많았어도, 그들의 자택이나 회사 사옥을 지은 건축가들은 주목받지 않았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건축가들을 다룬 신간 '경성의 건축가들'(루아크 펴냄)은 이들이 가치 중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꿈과 현실, 타협과 저항, 동경과 콤플렉스 사이에서 무수히 갈등했던 이들이라고 말한다. 서양 건축을 의식 없이 흉내 낸 B급 기술자가 아니라는 의미다.
조선인 최초로 총독부 건축기사가 된 것을 비롯해 '최초'와 '최고', '유일'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 박길룡(1898~1943)이 대표적인 사례다.
경성 인구의 80%가 구경을 왔고 "아침에 들어가면 해가 져서야 나온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떠돌았던 화신백화점(지금의 종로타워 자리) 등 당대 최신식 건물들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박길룡의 삶을 들여다보면 매우 모순적이다. 그는 낮에는 총독부에서 건축 일을 하고 밤에는 조선인 건축주가 의뢰한 주택과 사무소를 설계했다. 일제 치하에서 승승장구했지만, 우리말로 된 최초의 건축 월간지 창간, '조선어 건축용어집' 발행 시도, 차별받던 조선인 건축가들의 포용 등의 업적도 남겼다.
또 다른 건축가 이천승(1910~1992)의 삶은 정반대의 측면에서 흥미롭다. 저자는 도시계획에 먼저 도전할 정도로 선각자였던 이천승이 박길룡이나 김중업, 김수근만큼 기억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아래와 같은 해석을 내놓았다.
"어쩌면 그의 재주가 시대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빙판에서 미끄러져 보지 않고 시대의 표면 위를 매끄럽게 잘 빠져나갔기 때문은 아닐까. 시대상은 보여도 시대 의식이 보이지 않는 삶은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책은 시인이면서도 건축가였던 이상을 비롯해 강윤, 박인준, 김세연, 김윤기 등 우리가 잊고 지냈던 수많은 이들도 불러낸다. 종로 공평동의 박인준건축사무소 건물을 비롯해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건물들이 조선인 건축가들의 꿈과 성취, 좌절 등이 녹아있는 곳이라는 점도 일깨워준다.
대학에서 철학과 건축공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건축스토리텔링연구소 아키멘터리 대표인 김소연 씨가 집필했다.
276쪽. 1만5천 원.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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