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10회 안타로 물꼬…11-8 승리 '숨은 주역'
(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솔직히 분위기 많이 가라앉아 있죠. 제가 경기 나갈 기회도 없고, 뒤에서 분위기 띄우려고 해도 쉽지 않아요. 지금 대표팀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9일 한국과 대만의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서울라운드 A조 최종전을 앞두고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만난 오재원(32·두산 베어스)은 속에 담았던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다.
대표팀은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에 덜미가 잡혀 2개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 확정됐고, 여기에 태도 논란까지 불거져 더욱 궁지에 몰렸다.
선수들은 부진한 성적과 논란에 입을 닫았고, 이날 경기를 앞두고도 웃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대표팀 훈련이 마무리될 때 무렵 더그아웃 앞에서 만난 오재원은 "우리가 실력이 부족해서 이렇게 된 것이니 할 말이 없다"면서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게 경기에서 제대로 나오지 않아 더 속상하다"며 입을 열었다.
흔히 오재원을 두고 '같은 팀이면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상대로 만나기는 싫은 선수라고 말한다.
그만큼 팀과 팬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선수인데, 그런 오재원조차 이번 대표팀을 두고 "다들 가슴에 뭔가 짓눌려 있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차라리 경기에 나가서 뛰기라도 했으면 덜 답답했을지 모르지만, 오재원은 앞선 2경기에서 네덜란드전 1타수 무안타가 전부였다.
오재원은 "분위기를 띄울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라커룸으로 발걸음을 돌렸는데, 대만과 최종전에서 그토록 기다렸던 기회가 왔다.
한국은 2회에 6-0으로 앞서가며 그동안 쌓인 울분을 터트렸지만, 대만에 조금씩 추격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재원은 8-5로 앞선 6회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한 이대호의 대주자로 경기에 투입됐다.
결국 한국은 8-8 동점까지 허용했고, 오재원은 8회 자신의 첫 타석에서 삼진으로 물러났다.
기회는 10회 찾아왔다.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등장한 오재원은 천훙원의 2구를 때려 중견수 앞 안타로 출루했다.
오재원이 안타로 출루하자 2년 전 프리미어 12 일본과 준결승에서 9회 대타 안타로 물꼬를 튼 장면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상은 현실이 됐다.
1사 1루에서 손아섭의 좌익수 앞 안타가 터졌고, 오재원은 3루까지 진루한 뒤 양의지의 희생플라이 때 홈을 밟아 결승 득점을 올렸다.
오재원이 막힌 '혈'을 뚫자, 대표팀 타선도 다시 터졌다.
2사 1루에서 대타로 등장한 김태균은 경기에 쐐기를 박는 투런포를 터트렸다.
그토록 분위기 띄울 기회를 찾던 오재원은 마지막 순간 제 역할을 해냈고, 한국은 11-8로 힘겹게 승리하며 안방에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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