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른바 '태극기 세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친박단체들로 구성된 '대통령 탄핵무효 국민저항 총궐기운동본부(국민저항본부)'는 탄핵 다음 날인 11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탄핵무효' 집회를 열었다. '탄기국(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의 후신인 이 단체는 성명을 통해 헌재의 '국가반란적 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면서 헌재를 해산하고 재판관 9명을 새로 지명해 다시 심판할 것을 촉구했다. 이 단체는 지난달 '새누리당 창당준비위'를 결성해 선관위에 신고했다. 이날 집회 현장에서 새누리당 입당 원서를 배포해 즉석에서 받기도 했다. 모두 70만 명(주최 측 발표)이 모였다는 집회에는 자유한국당의 김진태·윤상현·조원진 등 친박계 의원들과, 탄핵심판에서 대통령 측 대리인이었던 김평우·서석구 변호사가 참석했다고 한다.
반면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측은 4개월 넘게 이어진 주말 촛불집회의 마감행사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졌다. 이 단체는 '촛불의 승리'를 선언하고, 박 전 대통령 구속,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퇴진, 국정농단 공범자 처벌 등을 요구했다. 분위기는 축제 비슷했지만 박 전 대통령의 즉각적인 청와대 퇴거, 청와대 압수수색 등을 요구하는 구호도 나왔다. 이 단체는 세월호 사고 3주기 전날인 4월 15일까지 집회를 중단하기로 했다. 하지만 국민저항본부의 향후 집회 강도에 따라 퇴진행동 측 입장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에 강력히 반대해온 국민저항본부의 상실감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복과 반발 수위가 지나친 것 같아 걱정이다. 헌재의 이번 탄핵 결정을 넘어서 헌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헌재 결정에 재심 절차가 없기는 하나 '헌재 해산' '재판부 재구성 재심판' 정도까지 나가면 헌정 체재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비칠 수도 있다. 반대 진영에서 한때 '기각하면 혁명' 운운한 것과 다를 바가 별로 없다. 그런 결과는 국민저항본부 측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창당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도모하고 있다면 더더욱 법치에 반하는 행동부터 중단해야 한다. 법치를 그렇게 흔들고 나서 어떤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 하는지 묻고 싶다.
국민 갈등 치유가 절실한 시기인 만큼 야권도 자중했으면 좋겠다. 일례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지난 10일 대통령 탄핵 직후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을 지켜온 1천500만 촛불민심은 오늘을 시민 명예혁병의 날로 기억할 것"이라면서 "촛불민심이 없었으면 국회의 압도적 탄핵 가결도, 특겸의 세계적 활약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했다. 그러고 나서 "헌재 결정에 모두가 절대 승복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추 대표는 같은 날 헌재선고 2시간 전 열린 최고위원 회의에선 "대통령 한사람이 초래한 국론분열 치유와 조속한 국정안정을 위해 헌재가 만장일치로 인용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추 대표가 헌재 결정에 대한 국민적 승복를 거론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국민저항본부 같은 친박 세력에는 명백한 '불복 명분'이 될 수 있다.
헌재의 대통령 탄핵으로 본격적인 대선 국면이 열렸다. 그래서인지 국민저항본부의 수위 높은 반 헌재 공세를, 창당 움직임과 묶어서 보는 관측이 적지 않다. 기존의 탄핵 반대 세력을 토대로 삼아, '탄핵 이후'를 걱정하는 범 보수 정서를 '새누리'라는 당명 아래 총결집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만 두 달도 남지 않은 초단기 대선 국면에서 어느 정도 변수가 될지 궁금하다. 하지만 결과를 떠나 국민저항본부는 법치의 틀 안으로 일단 들어와야 한다. 실속 없는 '세 과시'에 매달리지 말고, 자기주장도 합리적인 논리와 명분을 세워 펼치는 것이 좋다. 당연히 옥외집회 시에는 법적인 절차를 준수하고, 시민들한테 과도한 불편을 주거나 위험한 상황을 만드는 행위는 극도로 자제해야 한다. 요컨대 잠재적 경쟁 진영과 분명히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정치적 기회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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