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국회 헌법개정특위가 13일 전체회의를 열어 소위원회 논의 결과를 보고 받았다. 아직 윤곽이 잡혔다고 하긴 시기상조지만 가시적 진전도 없지 않은 듯하다. 우선 대통령·국무총리 간 권한 분점과 대통령 직선제 유지에 소위 차원의 의견을 모은 부분이 눈에 띈다. 여기에다 국민 법률발안제 도입, 안전권·정보기본권·환경권·건강권·망명권 등 기본권 신설,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 명시 등에도 상당히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하니 이 또한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나 대통령 4년 중임과 6년 단임, 대통령과 국무총리 간의 분권 수준, 내각 구성, 총리와 의회 간 관계 등에는 의견이 엇갈린 것 같다. 또 선출직 공직자 국민소환제, 국회의원의 회기 중 불체포특권 폐지, 양원제 및 지방분권제 도입 등에도 찬반이 팽팽했다고 한다. 개헌특위는 14∼15일 제1소위와 제2소위를 차례로 열어 세부 내용을 조율할 예정이다. 대선은 코앞인데 아직 갈 길이 먼 것은 분명하다.
일단 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3당은 개헌에 적극적이다. 이들 3당은 12일 원내대표 회동에서 이달 28일까지 단일안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거의 매일 같이 실무진 논의를 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바른정당 홍일표 간사는 "3당 간 이견이 상당히 좁혀져 28일까지 합의안 도출은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당과 바른정당은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를, 국민의당은 6년 단임 분권형 대통령제를 원하지만 4년 중임제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전 개헌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은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안 국민투표를 사실상 당론으로 정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도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투표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이날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 "60일 대선 정국에서 개헌에 합의하기는 어렵다"며 안 전 대표에 동조했다. 한국당(94석)과 바른정당(32석)이 설사 개헌안에 합의해도 국민의당 동의를 얻지 못하면 재적 과반(150석)이 필요한 개헌안 발의가 어렵다. 이번 대선 때 개헌 국민투표까지 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를 분권형으로 바꿔야 한다는 데는 국민과 정치권이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최근 안창호 헌법재판관의 제안이 큰 관심을 모은 것도 그런 공감대에 울림을 줬기 때문이다. 안 재판관은 대통령 탄핵결정 보충의견에서 "대통령 권력의 과도한 집중이 피청구인의 법 위반을 부추긴 요인일 수 있다"면서 권력공유형 분권제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런 정도면 개헌의 당위성은 충분히 숙성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헌 시기로 가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연합뉴스와 KBS가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한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대선 후' 개헌에 찬성하는 응답자가 45.8%로 '대선 전'(32.7%)보다 훨씬 많았다. 사실 '1987년 체제'를 30년 만에 바꾸는 개헌인 만큼 손을 댈 곳도 많다. '5월 9일' 대선을 전제로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권의 대선 전 합의 도출도 난망하다. 개헌 논의에서 국민 여론이 충실히 반영되지 못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그래서 대선 후 개헌 쪽으로 여론이 기우는 것 같다. 문제는 대선 전에 말만 무성하고 정권의 향배가 가려지면 유야무야되는 '공약(空約) 트라우마'다.
현실적으로 분권형 개헌은 다음 대통령의 임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4년 중임제로 개헌할 경우 다음 총선과 맞추려면 차기 대통령의 임기 단축이 필요하다. 대선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상대적으로 개헌에 소극적인 것도 그런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다른 대선 주자도 비슷한 형편이라면 마찬가지일 수 있다. 대선 전 개헌을 주장하는 쪽에 정치공학적 계산이 전혀 없다고 하기도 어렵다. 짧은 대선 기간이지만 흔들리지 않는 개헌 공약이 필요한 이유다. 대선 전에는 각 정당이 큰 틀의 원칙에만 합의하면 될 것이다. 그 합의를 전제로 대선 주자들이 각자 개헌 로드맵을 제시하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렇게 하고도 약속을 깬다면 정치 생명으로 대가를 치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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