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국민투표 앞둬 강경일변도 대립…'브레이크 없는 질주'
네덜란드 "나치 발언 용납 안돼"…'테러주의' 여행경보 발령
터키, 강경진압에 격분…영사관 침입해 네덜란드 국기 내려
(브뤼셀·이스탄불=연합뉴스) 김병수 하채림 특파원 = 지난 11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개최하려고 했다가 무산된 터키 개헌안 지지집회를 둘러싸고 네덜란드와 터키 간 외교분쟁이 격화하고 있다.
양국은 전날에 이어 13일(현지시간)에도 상대방 주요인사들의 발언과 상대국의 대응 조치에 대해 거친 비난을 주고받으며 가파르게 대립했다.
네덜란드는 오는 15일 총선을, 터키는 내달 16일 개헌안 국민투표를 각각 앞두고 있어 외교분쟁이 격렬해지면 오히려 내부 단합을 기대할 수 있어 손해 볼 게 없다는 계산인 듯 양측은 브레이크 없이 충돌을 향해 질주하는 양상이다.
특히 로테르담에서 집회가 무산된 데 대해 터키인들이 암스테르담에서 항의 집회를 열자 네덜란드 경찰은 물대포를 쏴가며 이들을 강제 해산시켰고, 이 과정에 일부 시위대가 부상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설상가상의 상황이 됐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 주말 로테르담 집회에 참석하려던 터키 외교부 장관이 탄 비행기가 네덜란드 당국으로부터 착륙을 거부당한 데 이어 터키 가족보건부 장관이 로테르담 영사관에 진입하려다가 국경 밖으로 쫓겨나자 네덜란드를 '나치 잔재', '파시스트'라고 비난했다.
앞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독일에서 개최되는 터키 개헌안 지지집회에 터키 외교부 장관이 참석하려다가 독일 당국의 불허로 무산되자 '나치의 관행'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는 지난 2차 대전 때 네덜란드가 나치의 희생자였음을 지적하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발언을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박하며 터키의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자 터키 외교부는 13일 앙카라주재 네덜란드 대사를 세 번째 초치해 네덜란드 당국의 두 터키 장관 입국 거부와 네덜란드 경찰의 시위 과잉진압을 강력히 항의했다.
또 터키 법무부 장관은 터키는 네덜란드에 맞서 "국제법에서 허용하는 모든 가능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말했고, 터키 EU 담당 장관은 네덜란드에 대한 제재를 주장했다.
터키의 주류 언론들도 네덜란드 경찰견들이 로테르담에서 친(親) 에르도안 시위대를 공격하는 사진을 보도하면서 "전 세계가 터키 국민을 공격하는 야만성을 보고 있다"고 격분하며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전날 터키 곳곳에서는 반(反)네덜란드 시위가 벌어졌으며 특히 이스탄불에서는 한때 시위대가 네덜란드영사관의 국기를 내리고 터키기를 올리기도 했다.
이에 네덜란드 정부는 터키를 방문하는 자국민에게 테러 등에 대비, '여행경보'를 발령하며 맞섰다.
네덜란드 외교부는 성명에서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네덜란드와 국민에 대한 매우 비판적인 언급들이 있다"면서 "터키 총리는 네덜란드 방문객들에게 영향이 없다고 선언했지만, 터키 전역에서 집회나 다중이 모이는 장소는 피하는 등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총선을 앞둔 뤼테 네덜란드 총리는 '반(反이슬람)·반(反)난민'을 내세우는 극우정당 자유당(PVV)당의 지지도가 올라가 총선에서 자신의 자유민주당(VVD)과 제1당 자리를 놓고 격전을 벌이자 이를 의식해 네덜란드 내 터키인들의 집회에 강력히 대응하는 양상이다.
또 모스크(이슬람 사원) 철폐·쿠란(이슬람 경전) 금지를 공약으로 내세워온 포퓰리스트 정치인인 헤이르트 빌더르스 PVV 대표는 최근 들어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다가 터키와의 외교분쟁이 격화하자 반전의 계기로 삼고자 '반(反) 터키' 공세의 고삐를 죄고 있다. 빌더르스 대표는 에르도안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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