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연령 낮아지고 이혼 단독가구 많아져 대책 시급
"자존심 강해 어려움 알리지 않다가 극단 택해"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15년 전 아내와 이혼한 뒤 혼자 사는 A(52) 씨는 6개월 전부터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인력사무소를 통해 배달과 공장일을 소개받아 생계를 꾸려왔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일감이 뚝 떨어지고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계속 늘어나면서 모든 일에 의욕이 저하됐다.
A씨는 모아둔 돈이 떨어지고 끼니를 챙겨줄 사람도 없자 점점 식사 횟수를 줄였다. 지난 1월에는 물만 마시며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극심한 영양실조로 침대에만 누워 생활하던 A씨는 복지 사각에 놓인 주민을 찾기 위해 가정방문을 다니던 마을 통장에게 발견된 뒤 병원으로 옮겨져 한 달간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A씨는 "그동안 건강했고 수입도 있었던 터라 도움을 받는 대상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줘서 고맙다"고 전했다.
4년 전 팔과 다리에 중상을 입은 뒤 기력이 약해져 일용직 근로에 어려움을 겪는 B(58) 씨도 최근 복지 사각지대 발굴에 나선 공무원에게 발견돼 긴급 생계지원을 받게 됐다.
수입이 끊긴 뒤 혼자 여관방에서 하루 한 끼를 먹으며 버티는 어려운 생활을 했지만 그동안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홀로 사는 40∼50대 장년층이 의외로 복지사각 지대에 놓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사상구가 도움이 필요하지만 현 복지제도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은 주민을 찾아 나선 결과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
사상구는 지난 1월부터 두달간 관내 9만6천519세대를 대상으로 290명의 마을 통장이 가정방문을 하는 방식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모두 1천212가구의 복지 사각지대 주민 중 33%에 해당하는 399가구가 40∼50대 장년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20∼30대 가구는 없었고 나머지는 60세 이상 노년층이었다.
구진근 사상구 복지정책과장은 "혼자 사는 40∼50대에서 '은둔형 취약계층'이 너무 많이 발견돼 깜짝 놀랐고 사회 변화를 실감했다"면서 "이들 세대는 다른 세대보다 자존심이 상대적으로 강해 어려움을 겪어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 경향이 있어 찾아다니는 복지가 아니면 발견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리해고나 일자리 부족으로 인해 퇴직 연령이 계속 낮아지고 이혼 증가로 장년층 독거 가구가 많아져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40∼50대의 고독사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로 한 유품정리업체가 밝힌 2012년∼2015년 고독사 통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대가 40대(16.6%)와 50대(39.3%)로 나타나기도 했다.
박민성 사회복지연대 사무처장은 14일 "40∼50대는 가정이나 사회를 책임져야 할 세대라는 인식이 강해 그동안 '보호해야 할 세대'로는 보지 않았다. 그들 세대 스스로도 어려움을 겪게 되면 '내가 뭔가를 잘못했다'고 자책하거나 끙끙거리며 참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들 세대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심리적·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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