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인형의 집'으로 잘 알려진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왕위 주장자들'이 154년 만에 국내 초연된다.
서울시극단은 창단 20주년을 기념해 이달 31일부터 다음 달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왕위 주장자들'을 공연한다.
입센이 1863년에 쓴 '왕위 주장자들'은 13세기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왕권 다툼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인간 심리에 대한 정교한 묘사와 인간에 대한 통찰에 중점을 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왕위에 대한 확신을 지닌 호콘왕(김주헌 분)은 스베레왕이 서거한 뒤 왕이 되지만 다른 왕위 주장자들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한다. 역시 왕위를 주장하는 스쿨레 백작(유성주 분)은 옥새를 지닌 채 6년간 섭정을 한다. 호콘왕은 스쿨레 백작의 딸을 왕비로 간택하면서 화해를 시도하지만 스쿨레 백작은 호콘의 아들이자 자신의 외손자를 죽이려 하면서까지 왕위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교회를 대표하는 니콜라스 주교(유연수 분)는 호콘왕과 스쿨레 백작 사이를 교묘히 오가며 이들의 갈등을 부추긴다. 스쿨레 백작은 결국 스스로 자신을 왕으로 선언하기에 이르는데….
저마다 자신이 왕이 되기에 적합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공교롭게도 대통령 선거 국면과 맞물려 자신이 차기 리더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연출을 맡은 김광보 서울시극단 예술감독은 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연 제작발표회에서 "대선과 맞물려 의도적으로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우연의 일치'"라면서 "이미 2015년 서울시극단장으로 취임할 때 이 작품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김 연출은 이어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어쩌면 이렇게 우리 시대와 잘 맞아 떨어질까' 하는 생각도 했다"면서 "그러나 그것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세 주인공의 캐릭터였다. 내면의 심리적 상태가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와 연출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각색을 맡은 고연옥 작가는 "지금까지 입센 작품은 인물들이 정형화돼 있고 주제의식도 근대적이라고 생각해 그리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면서 "그러나 이번 작품은 작품을 끌어가는 사건들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내면과 갈등, 욕망의 충돌에서 파생되고 있어 현대극의 요소가 많다"고 설명했다.
고 작가는 "의도하진 않았지만 한국 사회를 떠올리게 하는 측면도 있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작품을 번역한 김미혜 한양대 명예교수는 "입센은 흔히 사회문제극 작가로 여겨지지만, 역사극도 썼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면서 "단지 인간의 권력욕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권력을 향해가면서도 끊임없이 의심과 확신을 오고 가는 인물의 심리적인 측면도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으로, 역사극이면서도 입센의 심리극 출발점이 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개막에 앞서 16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종합연습실에서 노르웨이 역사를 소개하고 작품의 일부를 낭독하는 낭독회가 열린다. 티켓 2만∼5만원. 문의 ☎ 02-399-1000.
서울시극단 창단 20주년을 기념해 프리뷰 공연 기간인 31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극단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좋아요'를 누른 관객에게 정가 5만원인 R석 티켓은 2만원에, S석과 A석은 1만원에 할인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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