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지났지만 아직 저조…농민단체 "정부에 책임 있어"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 지난해 쌀값 폭락으로 야기된 사상 초유의 공공비축미 우선지급금 환수 거부 사태가 현실화하면서 정부와 농민단체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우선지급금은 정부가 쌀값 안정을 위해 공공비축미나 시장 격리곡을 쌀 농가에서 매입할 때 현장에서 미리 지급하는 돈인데, 나중에 정산 절차를 통해 추가 지급하거나 환수해야 한다.
올해는 2005년 제도 도입 후 처음으로 농가가 미리 받은 우선지급금의 일부를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지만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환수 거부 운동이 벌어지면서 논란이 커졌다.
15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고지서 발송 이후 보름여가 지난 13일까지 정상적으로 환급된 공공비축미 우선지급금은 총 197억원 중 28억7천만원(약 14.6%)에 불과하다.
대상 농민 수 기준으로는 총 22만명 중 3만6천923명(16.7%)만이 절차에 따라 과다 지급된 우선지급금을 반납했다.
농식품부는 우선지급금 환수에 대한 농민단체의 반발이 거센 점을 감안해 애초 환급 시한을 못 박지 않은 채 고지서를 발송했다.
환급 시한을 못 박을 경우 시한 초과에 따른 가산금이 붙을 수 있어 농민들의 반발이 더욱 거세질 수 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우선지급금 환수 사태가 처음 있는 일인 만큼 농민들의 정서를 고려해 일부러 환급 시한을 못 박지 않았다"며 "각 지자체와 농협의 협조를 얻어 지속적인 독려를 통한 환급을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2005년 공공비축미 우선지급금 제도를 도입한 뒤 처음으로 환급 사태가 빚어진 것은 지난해 쌀값이 2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폭락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공공비축미를 쌀 농가에서 매입할 때 적용하는 가격은 수확기인 10~12월 평균 가격인데, 정확한 매입가격은 12월 말이 돼야 확정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농민들의 편의를 위해 쌀 매입금을 미리 지급한 뒤 나중에 최종 매입가가 확정되면 정산 절차를 거쳐 돈을 추가로 지급하거나 일부를 환급받게 된다.
매입가가 우선지급금보다 높으면 정부가 농민에게 차액을 추가로 지급하고 우선지급금이 더 높으면 농민으로부터 차액을 돌려받는 것이다.
지난해의 경우 우선지급금은 8월에 1등급 40㎏ 포대 기준으로 산지 쌀값의 93% 수준인 4만5천원으로 책정됐다.
하지만 쌀값이 폭락하면서 실제 매입가격은 나중에 4만4천140원으로 확정됐다.
포대당 860원의 차액이 발생해 농민들이 이미 받은 돈 가운데 이 차액을 토해내야 할 처지에 처한 것이다.
농식품부는 전국적으로 돌려받아야 할 환급금 규모가 197억원이며, 농가당 8만5천원 가량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정부가 공공비축미 우선지급금 제도를 도입한 2005년 이후 2015년까지는 우선지급금이 실제 매입가보다 낮아 포대당 평균 4천500원 정도를 추가 지급해왔지만 지난해에는 우선지급금이 매입가보다 포대당 2천400원 더 높아 농가가 우선지급금의 일부를 정부에 반납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는 당연히 쌀 농가가 과다 지급받은 우선지급금을 환급해야 하지만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우선지급금을 돌려줄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서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전농 등은 쌀값이 폭락해 농민 소득이 줄어든 것도 타격인데 이미 지급한 돈을 돌려달라고 하는 것은 정부 정책 실패의 책임을 농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고지서 소각투쟁까지 벌이는 등 과격 양상도 보이고 있다.
전농 관계자는 "정부의 정책 실패로 야기된 쌀값 폭락의 책임을 농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우선지급금 환급 거부 투쟁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우선지급금은 정산을 전제로 한 가지급금이며, 농가는 매입계약서 서명을 통해 반납금이 생길 경우 환급하기로 이미 서명한 상태"라며 "환급을 거부한다면 우선지급 시스템의 지속적 운용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그러나 환급 거부 농가에 대한 벌금 부과 등의 강경 대응보다는 지속적 설득과 독려를 통한 환급률 제고에 주력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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