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남자와 금성여자' 페미니즘으로 해체하다

입력 2017-03-15 10:19  

'화성남자와 금성여자' 페미니즘으로 해체하다

신간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남성은 공격적이고 여성은 보살핀다. 남성은 독립적이고 여성은 관계중심적이다. 남성은 여성의 젊음·아름다움·연약함에 끌리고 여성은 남성의 권력·지위·돈에 끌린다.

성별 차이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은 1990년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전세계인의 연애교과서가 되면서 상식으로 굳어졌다. '화성남자 금성여자'는 인간의 행동과 심리에까지 자연선택 이론을 들이댄 20세기 진화심리학의 대중적 버전이기도 하다.

그 결과 성관계는 오로지 자식을 많이 남기기 위한 수단이 됐다. 남성은 겁탈을 시도하고, 여성은 어느 정도 저항하면 좋다. 저항을 뚫는 남성의 유전자는 "크고 강하고 성적으로 공격적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강간이 범죄라는 사실도 유전자의 명령이라는 이름으로 간단히 무시된다.

미국 페미니스트 마리 루티는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동녘사이언스)에서 진화심리학이 성별 고정관념에 과학적 이론과 사회적 법칙의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철저한 이분법과 유치한 논증으로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제를 공고히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남녀가 각각 고유한 유전적 특성에 따라 행동한다는 진화심리학의 뼈대는 동성애에 대한 다소 궁색한 설명에서 설득력을 잃는다. 가설 중 하나는 동성애자 남성이 여성을 유혹할 매력이 없어서 번식에 실패한 남성들이라는 것이다. 동성애자는 이성에게 버림받고 동성과 무성 섹스를 나눌 수밖에 없는 '실패한 이성애자'일 뿐이다.

오늘날 각광받는 진화심리학의 대부 격인 에드워드 윌슨은 "남녀가 똑같이 교육받고 모든 직업에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다 해도 남자들은 정치·사업·과학 분야에서 계속해서 압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 사회는 인종차별에 민감하지만 진화심리학이 퍼뜨리는 성차별에는 이상하리만치 관대하다.

사랑과 연애에서 혼란·불안·불확실함을 제거하고 상대의 행동과 생각을 예측 가능하게 돕는 명쾌함은 확실한 매력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와 상대의 간극에 대한 편리한 변명이기도 하다. 성별 차이 때문이라고 핑계대기 전에 타인을 이해하려 노력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김명주 옮김. 304쪽. 1만8천원.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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