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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 필리핀이 오랜 동맹인 미국에 등을 돌리고 중국과 '신밀월' 관계를 구축한 뒤 나타난 대중(對中) 바나나 수출 급증이 현지에서 논쟁을 촉발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필리핀 바나나의 중국 수출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지난해 10월 이후 급증했다.
2014년에서 2016년 사이 3분의 2 이상 급감했던 대중 수출은 지난해 4/4분기에는 1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늘었고, 12월에는 필리핀의 바나나 수출량의 거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앞서 중국은 남중국해 분쟁도서 영유권을 둘러싼 필리핀과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2012년 필리핀산 바나나와 파인애플, 파파야 등의 검역을 대폭 강화함으로써 사실상 통관을 거부했다.
세계 2위 바나나 수출국으로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중국에 수출하고 있었던 필리핀은 이로 인해 상당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취임한 두테르테 대통령이 중국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밝히며 미국과 거리를 두는 상황 속에서 중국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방중을 앞둔 지난해 10월 필리핀산 과일에 대한 수입제한 조치를 4년만에 해제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최근 중국이 더 많은 과일과 채소를 수입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경제에 기운을 불어넣었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중국 국민이 필리핀의 "혹독한 경제를 살려낼 충분한 여지를 줬다"면서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필리핀대 허먼 크라프트 정치학 교수는 "바나나 수출이 앞서 필리핀-중국 관계의 단절을 상징했다면, 이제는 양국 관계 정상화의 전조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필리핀 정부는 또 중국이 망고스틴에서 열대과일인 두리안까지 10억 달러(약 1조1천500억원) 상당의 농작물을 추가로 수입하는 계약이 있을 예정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20년 넘게 시장을 지낸 다바오시가 있는 남부 민다나오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다.
필리핀 매체인 '스타'의 칼럼니스트 부 찬코는 중국의 수입 급증은 필리핀이 "바나나 공화국"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바나나는 정치인들에게는 핵심적인 주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텃밭인 민다나오에서는 대규모 농장이 지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면서 "두테르테 대통령은 그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FT는 수치를 자세히 살펴보면 두테르테 대통령과 필리핀 정부가 선전하는 것과 같은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필리핀의 바나나 수출 총량은 지난해 말로 갈수록 더욱 빠른 속도로 증가한 데다 지난해 12월 기준 중국의 수입가는 1t당 322 달러로 다른 나라 평균(382달러)보다 낮았다는 것이다.
필리핀 드 라 살 대학 조교수인 리처드 자바드 헤이타리언은 "우리는 분명한 이익이 거의 없는데도 두테르테가 중국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공짜 홍보를 해주는 이상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진단했다.
k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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