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사망사고를 목격한 뒤 후유증을 앓다 9년 만에 자신도 철로에 뛰어든철도 기관사의 죽음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한국철도공사 소속 기관사로 일했던 박모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공단 측 상고를 기각하고 유족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확정했다고 16일 밝혔다.
1988년 7월 기관사로 입사한 박씨는 2003년 경부선 기차를 시속 110㎞로 운행하던 중 선로 내로 들어온 사람을 불가피하게 치어 숨지게 했다.
충돌 후에도 330m를 더 간 탓에 시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지만 박씨는 이를 직접 수습한 뒤 계속 운전해 부산역까지 도착했다.
이후 박씨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을 호소했지만 회사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기관사로 계속 근무하던 박씨는 직장 동료와 잘 어울리지 못하며 갈수록 소외됐고, 1인 승무 업무를 하면서는 고객의 항의 등으로 우울증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결국, 2012년 6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선로에서 뛰어내렸다.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자 2014년 소송을 냈다.
1심은 "망인이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왔고, 다른 지병을 앓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업무상 스트레스를 제외하고는 자살을 선택할 동기나 계기가 될 수 있을 만한 사유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2심과 대법원도 마찬가지 판단을 내렸다.
유족을 대리한 최종연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2014년 대법원이 '사망사고 목격 7년 후 자살은 업무상 재해가 아니다'라고 본 판결을 뛰어넘는 진일보한 판례"라며 "외상사고를 겪을 수밖에 없는 철도 기관사들에 대한 제도적인 보호조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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