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나간 中 반한정서…사드보복 중국의 오판과 모순

입력 2017-03-16 11:57   수정 2017-03-16 14:46

너무 나간 中 반한정서…사드보복 중국의 오판과 모순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중국 당국이 한국에 대한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숨 고르기에 들어간 눈치지만 중국 일반의 반한(反韓) 정서와 롯데 불매 움직임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예상보다 거센 반한 분위기가 혐한, 군사타격, 단교 주장까지 이어지는 상황에 중국의 전략 오판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중국 당국도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는 애국주의를 과용하는데 따른 부담을 인식하고 있다.

관영 중국중앙(CC)TV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인 '3·15 완후이(晩會)'가 우려와 달리 중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을 표적으로 삼아 공격하지 않은 점도 중국 당국의 인식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포인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선고 이후 반한 불매 움직임이 한국에서 역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뒤늦게 깨달은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 정부와 관영매체들이 이성적인 애국을 촉구하며 수위 조절에 나서고 있지만 중국 당국이 사실상 조장, 선동했던 반한, 롯데 불매 정서는 군중심리에 휩쓸린 중국인 사이에서 '애국주의'로 포장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중국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한국과 롯데를 비하하는 발언이 넘쳐나고 있다.

최근 중국 국가안전국 간부와 면담했다는 한 중국 소식통은 "중국 정부도 현재의 롯데 불매 움직임이 비이성적인 단계에 이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이 단계에서 조금씩 발을 빼려하지만 관성에 의한 반한 정서의 확대를 조절하기 어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초등학생을 동원, 롯데 불매 궐기대회를 열거나 포털 써우후(搜狐) 교육면에 "아이들이 왜 한국 제품을 먹지 말고, 한국 여행을 가지 말라고 하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설명하라"는 내용의 사설을 싣는 행태는 세뇌교육이라는 비판을 넘어 한중관계의 미래도 봉쇄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자칭궈(賈慶國) 베이징(北京)대 국제관계학원 원장은 최근 폐막한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政協)에서 "경제제재는 중국 관련 민간의 감정(정서) 대립을 야기하고 일단 대립 정서가 형성되면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족주의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잘 다루지 않으면 통제하기 어려우며, 적대 세력에게 공격 여지를 제공할 수 있다"며 "중국의 정치 안정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태의 진전을 지켜보고 있던 중국 당국은 뒤늦게 자국이 기대하지 않았던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중국외교 싱크탱크인 차하얼(察哈爾)학회의 덩위원(鄧聿文) 연구원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기고한 칼럼에서 "중국의 게임 계획이 무엇을 근거로 했든지 심각한 판단 실수를 저지른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덩 연구원은 박 전 대통령이 탄핵에 직면한 상황에서 중국이 사드 배치 결정이 취소되거나 최소한 새 대통령이 집권할 때까지 연기될 것으로 계산했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중국 인민들의 롯데 불매운동이 자발적일 수도 있지만 설령 자발적일지라도 이 과정에서 쌓인 감정은 이번 사태가 해결된 뒤에도 오랜 기간 지속되기 때문에 롯데그룹 보이콧을 부추기는 것은 필요하지도 않고 현명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정부 차원에서 최소한 민간의 롯데 불매와 반한 감정이 확산되는 것을 자제시켰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롯데 불매 궐기대회를 여는 행위는 정치 세뇌교육이라는 비판을 넘어 한중관계의 미래도 봉쇄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결국 한국을 적대시하는 중국의 속내와 민낯이 훤히 드러나면서 그 반작용으로 한국내 반중 정서가 촉발되고 더 나아가 중국이 기대하던 사드배치 철회는 더욱 어렵게 됐다.

한국내 적지 않았던 사드 반대 여론도 돌아서는 조짐을 보인다. 한국 네티즌 사이에서도 "사드에 반대했는데 중국의 보복 조치를 보고서 사드를 꼭 배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표명한 이들이 적지 않다.

지난 1월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사드배치 찬성은 51%, 반대는 40%였고 연합뉴스와 KBS가 지난 11∼12일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에서도 사드배치 찬성은 51.8%, 반대는 34.7%였다.

특히 중국의 장기 안보전략 차원에서 한국을 한미일 동맹 체제의 '약한 고리'로 보고 있다면 이번 사드보복 조치는 한국이 향후 중국으로 돌아설 여지를 아예 봉쇄해버리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캐리 황 SCMP 칼럼니스트는 "한중은 역사적 유대와 경제적 밀접성, 공통된 지역 안정 염원 등 관점에서 우호 관계를 유지할 이유가 충분하다"며 "일본, 대만과 갈등 관계인 중국도 동북아 안정을 위해 한국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북한 핵문제와 사드배치를 동급의 자국 이익 가치 훼손으로 병치해놓고 양비론으로 남북한 모두를 상대로 줄타기를 하고 있지만 문제 발생의 선후 관계를 도외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드배치를 놓고 한국에 배신당했다고 주장하지만 기실 중국은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뒷통수를 맞은 한국과의 협의를 한달여간 회피했다.

한 소식통은 "중국이 당시 북한 핵에 보다 강경하게 대처했다면, 당시 우호 관계였던 한국과 충분히 사전 협의를 했다면 이번 식의 사태전개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지도부가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주창하면서도 특정 외국기업 죽이기에 나서는 것은 중국 대외전략의 신뢰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심만 높일 뿐이라는 지적도 중국의 오판 가능성과 관련해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당장 국제 질서를 주도하는 주요 2개국(G2)으로서 글로벌 리더십에 대한 자격 시비가 불거질 소지가 있다.

한중 교역 규모가 지난해 2천113억 달러나 되고, 한국의 대중 투자액도 725억 달러에 이르는 상황에서 자국 경제에도 마이너스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롯데가 중국 사업을 접으면 약 10만 명의 중국인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중국의 유명 블로거 레이거(雷歌)는 "사드 문제 대처에 있어 치우친 관념과 타당하지 않은 수단으로 인해 중국이 궁지에 몰렸다"면서 "한중관계가 틀어지거나 경제나 외교를 단절하는 것 모두 '살적팔백 자상일천'(殺敵八百 自傷一千)이며 현재 중국의 취약한 경제 상황에서 경제 싸움을 거는 것은 좋은 점이 없다"고 지적했다.

더우기 패권주의, 제국주의를 지양한다며 미국을 비난해왔지만 최근 사드보복 조치에 비춰지는 중국의 모습은 동아시아의 주인인 양 이웃국가의 내정 문제까지 간섭하려는 패권국가의 행태와 똑같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에는 저자세이면서 한국만 유독 강압하는 것은 패권주의적 행태이자 이중잣대라는 것이다.

한 중국 전문가는 "강대국이 실제 패권을 지향하려면 경제, 군사적 힘에 못지않게 보편적 가치관으로 주변국과 국제사회를 포용하려는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이 정도의 치졸한 정치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게 내 판단"이라고 말했다.

북한으로부터 미사일 공격 방어가 한국의 합리적인 관심 사안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한국의 설명을 듣지 않으려는 중국의 자세 역시 항상 '냉정과 자제, 대화와 협상'을 주장해왔던 모습과 모순된다.

사드가 아니어도 미국이 이미 다른 레이더, 위성 등으로 충분히 중국내 군사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는데도 사드만을 갖고 걸고 넘어지는 중국의 태도가 합당치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중국 역시 사드 못지 않은 레이더망으로 한국, 일본은 물론 미국까지 감시하고 있으면서, 러시아도 초대형 레이더로 중국을 들여다보고 있는데도 이를 못 본 척 자국 주장만 되풀이하는 것은 적반하장 격이다.

여기에 남중국해에서는 국제법으로 인정되지 않는 주권을 내세워 인공섬을 건설하고 군사기지화를 강행하고 있는 중국의 모습도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블로거 레이거는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중국의 대답은 '우리가 우리 영토에서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말라'였는데 이런 논리로 보면 한국은 왜 북한의 현실적인 미사일 위협에 사드를 배치할 수 없느냐"고 반문했다.


joo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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