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 의붓딸 방치해 사망…계모 '부작위 살인죄' 인정될까

입력 2017-03-16 14:56   수정 2017-03-17 14:17

뇌출혈 의붓딸 방치해 사망…계모 '부작위 살인죄' 인정될까

'병원 데리고 가겠다' 학교에 문자 보내고 아무런 구호 조치 안해

경찰 "방치가 결정적 사망 원인" vs 계모 "위중한 상태인지 몰랐다"

원영이 사건 계모·친부에 적용…위험 방지 노력 했는지가 관건

(청주=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지적장애가 있는 9살 의붓딸을 밀쳐 다치게 한 뒤 장시간 방치해 숨지게 한 30대 계모에게 경찰이 '부작위 살인죄'를 적용,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밀쳐 다치게 한 것은 우발적이어서 살인하려는 직접적인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부모로서 자녀를 적절히 보호해야 할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모는 당시 아이가 사망에 이를 정도로 위중한 상태인지를 알지 못했다며 살인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양측이 팽팽히 맞서면서 이 사건이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청주 청원경찰서는 16일 지적장애 3급인 의붓딸 A(9)양을 밀쳐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계모 손모(34)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손씨는 전날 오전 7시 30분께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아파트 화장실에서 A양의 가슴을 손으로 밀어 다치게 한 뒤 12시간 가까이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손씨에 의해 밀려 넘어진 A양은 욕조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쳤는데, 검안의는 A양이 지주막하 출혈로 사망했다는 소견을 냈다.

애초 손씨를 상해치사 혐의로 긴급체포했던 경찰은 사건 당일 오전 8시 40분께 손씨가 A양 학교 담임교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 주목했다. '아이가 아파 학교에 못 갈 것 같다. 병원에 데리고 가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손씨는 A양이 방으로 가 누운 뒤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고, 이날 오후 3시 30분께 A양이 숨진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다.

손씨는 이때까지 A양에게 점심을 챙겨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경찰 신고는 오후 6시 53분께가 돼서야 퇴근한 남편 B(33)씨가 딸이 숨진 것을 확인, 이뤄졌다.

경찰 관계자는 "부모로서 마땅히 자녀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A양이 위험에 처했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 숨지게 된 점을 고려, 미필적 고의에 의한 부작위 살인죄를 적용했다"고 말했다.

미필적 고의란 직접적인 의도는 없었지만 범죄 결과의 발생 가능성을 예상했음에도 범행을 저지른 것을 말한다. 특히 부작위라고 하면 마땅히 해야 할 위험 방지 의무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를 더한다.

상해치사의 법적 형량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지만 부작위 살인죄는 일반 살인죄와 같이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지난해 국민적 공분을 샀던 경기도 평택 '원영이 사건'은 법원에서 부작위 살인죄가 인정된 대표적 사례다.

서울고법 형사1부(이승련 부장판사)는 지난 1월 20일 '락스 세례' 끝에 7살 신원영 군을 숨지게 하고 시신을 암매장한 계모 김모(39)씨에게 징역 27년, 친부 신모(39)씨에게 징역 1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숨지기 며칠 전부터 위험한 상황에 놓였는데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은 것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을 넘어 작위에 의한 살인이나 다를 바가 없다"며 1심과 마찬가지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부작위 살인죄를 유죄로 인정했다.

두 사람은 사체유기와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도 유죄로 인정돼 중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계모 김씨의 학대행위와 사망 간 인과관계가 형성되고, 이런 학대행위로 원영군이 숨질 수 있다는 것을 김씨가 충분히 예견했다고 봤다.

A양 사망 사건 역시 계모 손씨에 의해 머리를 다친 A양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음을 손씨가 알고 있었다면 부작위 살인죄가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분석이다.

경찰 조사에서 손씨는 자신 때문에 사망하기 전 A양이 화장실 욕조에 머리를 크게 부딪쳤음을 자백했다.

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 A양이 스스로 걸어 방으로 갔고, 누워있는 동안에도 팔이나 다리를 움직이는 거로 봐 몸에 큰 이상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게 손씨의 진술이다.

상해치사죄는 인정하지만 살인죄는 인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결국 경찰이 적용한 부작위 살인죄로 손씨를 기소하면 검찰과 변호인 간 법리 공방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조사된 손씨의 사건 당일 행적을 보면 미심쩍은 구석이 많은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증거가 손씨 진술뿐이어서 법원이 수사기관과 같은 판단을 내릴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jeonc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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