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기업 불법행위 따른 고통 배상할 의무…개인청구권 소멸 안해"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일제 강점기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 기업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법원이 또다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4단독 류종명 판사는 16일 이춘면(86) 할머니가 일본 기업 후지코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회사 측은 이 할머니에게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류 판사는 "일본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불법적인 침략전쟁을 수행하면서 군수업에 필요한 인력을 강제로 동원했고 후지코시는 이 정책에 적극 편승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인력 동원에는 다수의 학생도 포함됐다"며 "후지코시는 '근로정신대에 지원하면 상급학교에 진학시켜 주고 돈도 벌 수 있다'는 거짓말로 당시 13세이던 이 할머니를 회유했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이 할머니가 근로정신대에 들어간 이후 생명이나 신체에 위험하고 혹독한 노동에 강제로 종사했다는 점도 인정했다.
류 판사는 "이 할머니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10∼12시간씩 철을 깎거나 자르는 힘들고 위험한 업무에 종사했다"며 "후지코시의 불법행위로 이 할머니가 심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상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후지코시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 할머니가 입은 정신적 고통을 금전적으로나마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법원은 이 할머니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1965년 우리나라와 일본 간 체결한 '청구권 협정' 등을 이유로 소멸했다는 후지코시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류 판사는 "조약 체결로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 이외에 국민의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했다고 볼 수 없다"며 "국가가 조약을 통해 개인의 동의 없이 청구권을 직접 소멸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근대법의 원리와 상충한다"고 설명했다.
이 할머니는 후지코시 도야마 공장에서 강제노동 등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입게 된 정신적·육체적·경제적 피해를 보상하라며 2015년 5월 1억원 청구 소송을 냈다.
법원은 지난해 11월에도 근로정신대 피해자 할머니 5명이 후지코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회사 측은 1인당 1억원씩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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