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산골마을 여중생 하굣길…온 마을이 나서 해결

입력 2017-03-17 09:00  

불안한 산골마을 여중생 하굣길…온 마을이 나서 해결

양구 주민 "여중생 혼자 2시간 걸어 귀가"…교육청 "통학버스 한 번 더 운행하겠다"

(양구=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인적 없는 산길을 여중생이 혼자 2시간 동안 걸어오는 걸 보니 기가 찼습니다."

강원도교육청이 도입한 '에듀버스' 운행시간이 여중생의 하교 시간과 맞지 않아 5㎞의 산길을 걸어서 귀가하는 걸 본 양구군 한 산간마을 주민들은 남의 일로만 여길 수가 없었다.


공사 현장에서 일하며 혼자서 자녀를 키우는 아버지 A(47) 씨가 하굣길에 달려오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넉넉지 않은 형편에 택시로 하교시키는 것도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대출한 돈으로 굴착기를 산 A 씨는 요즘 봄을 맞아 시작된 일감을 놓칠 수 없어 지역교육청에 통학 대책을 호소했지만 별다른 도움을 얻을 수 없었다.

일부 주민이 혼자 걸어오는 여중생을 볼 때마다 태워주기도 했지만, 불안한 하굣길 문제를 해결할 근본 대책은 아니었다.

일반 버스는 오후 6시 30분에나 탈 수 있어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이를 보다 못한 주민들은 여중생의 하굣길을 도울 방법을 찾기 위해 주변에 사정을 알리기 시작했다.

또 여중생이 혼자서 2시간 동안 걸어서 집에 와야 하는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으리라고 보고 상급 교육 기관에 보낼 탄원서까지 준비했다.

주민들은 "여중생의 아버지가 지역교육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고 힘들어했다"며 "혼자서 산길을 2시간이나 걸어서 와야 하는 여중생의 형편도 딱하고,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도 안타까워 주변에 사정을 알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여중생의 불안한 하굣길이 마침내 세상에 알려지자 에듀버스의 노선을 조정하기 어렵다고 했던 지역교육청의 입장도 변하기 시작했다.

양구교육청은 이 여중생의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에듀버스를 한 차례 더 운행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하굣길 운행을 마친 에듀버스 가운데 가장 빨리 끝나는 차량이 여중생의 하교를 돕기 위해 우선 한 번 더 운행하기로 한 것이다.

또 하굣길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중학생들이 적지 않는 현실을 고려해 장기적으로는 통학 차량의 증차를 강원교육청에 요청하기로 했다.


강원도교육청도 이 여중생처럼 하굣길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을 돕고자 다음 달 출범하는 강원교육희망재단 차원에서 가칭 '꽃님이의 통학을 지원합니다'라는 하굣길 지원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A 씨는 "지역교육청으로부터 오후에 차량을 한 번 더 운행한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이제는 딸내미가 안전하게 집에 돌아올 수 있어 마음 놓고 일에 전념할 수 됐다"며 안도했다.

A 씨가 딸의 불안한 하굣길을 가슴 졸이며 지켜본 지 10여 일 만에 작은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dmz@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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