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총선, 유권자 심판 통했다…30년이래 최고 투표율 기록
철도역에도 투표소 설치…유권자 친화적 '찾아가는 투표소' 눈길
(헤이그=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 유럽 '선거의 해'를 맞이해 처음 실시된 네덜란드 총선에서 그동안 파죽지세 양상을 보였던 극우 포퓰리즘이 당초 예상을 깨고 미풍에 그친 것을 놓고 네덜란드 유권자들은 16일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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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반(反)이슬람·반(反)난민'이라는 배타적·적대적 정책을 내세워온 극우 포퓰리즘에 대한 심판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반면에 다른 일부 유권자들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거짓말을 일삼아온 기성 정치권에 대한 경고의 의미는 여전히 살아 있다고 평가했다.
총선 투표일을 하루 지낸 네덜란드 헤이그 시민들은 16일(현지시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밤새 개표 방송을 보도하며 총선 결과에 대해 다각적으로 분석하던 TV들도 총선 내용을 분석하는 기사에 집중하며 향후 연정구성이 어떻게 될지 전망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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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들은 우선 전날의 높은 투표율에 놀라는 모습이 역력했다.
네덜란드는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1970년까지 의무투표제가 실시돼 95% 이상의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투표는 민주시민의 당연한 의무라는 것이다.
의무투표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70% 이상의 높은 투표율을 보여왔다.
지난 2012년 총선의 경우 74.3% 투표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드러나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 탈정치의 흐름은 네덜란드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흐름과 달리 이번 총선에선 투표율이 지난 2012년 선거보다 7% 포인트 이상 증가해 81%를 넘을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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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영어신문인 'NL타임스'는 "이번 총선 투표율이 지난 2010년과 2012년 총선의 투표율을 넘어섰다"면서 "지난 1986년의 투표율 86% 이후 30년 만에 최고 투표율이 될 것"이라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투표율이 이처럼 높게 나타난 것은 모처럼 화창한 날씨였던 요인도 작용했지만 '반(反) 유럽연합·반(反)이슬람·반(反) 난민'을 내세운 극우 포퓰리즘이 파죽지세 양상으로 확산하자 유권자들이 너도나도 투표에 나서 심판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날 헤이그 센트럴 역에 마련된 투표소에는 온종일 유권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선관위에서 나온 투표관리요원은 "헤이그 센트럴역 투표소에서만 하루 2천 명 이상 투표할 것"이라며 "최근 선거보다 참여율이 높아 보인다"면서 투표용지가 가득 담긴 뒤 자물쇠로 잠긴 투표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보안을 이유로 학교나 동사무소와 같은 곳에만 투표소를 마련하는 한국과 달리 유권자들이 편리하게 투표할 수 있도록 기차역에까지 투표소를 설치한 '유권자에 대한 배려'가 눈길을 끌었다.
한 헤이그 시민은 "최근엔 정치권에서 기차 안에도 투표소를 설치하자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유권자들은 신분증을 제시해 간단하게 신분확인을 거친 뒤 기표소에서 빨간 펜으로 투표를 했다.
네덜란드는 하원 150명을 비례대표로 선출하기 때문에 투표소마다 각 정당에서 추천한 후보들의 전체 명단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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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참여정당이 28개나 되다 보니 투표용지의 크기도 한국에 비해 훨씬 컸다.
투표율 상승은 극우 포퓰리리스트 정치인인 헤이르트 빌더르스 자유당(PVV) 대표에게 큰 타격을 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젊은층이 많이 사는 네덜란드 3대 도시인 암스테르담과 헤이그, 로테르담의 투표율이 높았다.
헤이그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극우 정당 PVV의 빌더르스 대표가 내세워온 포퓰리즘 노선이 여론조사 결과에 크게 미치지 못한 가운데 찻잔 속의 태풍에 머문 것에 대해 "당연한 결과", "네덜란드 유권자들의 지성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물론 장년층 유권자 중에는 "빌더르스가 기성 정치권에 각성의 메시지를 던졌다"고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헤이그를 여행중이라고 밝힌 코르벤 덴 베르는 빌더르스 대표에 대해 "수치"라면서 "시대착오적인 정책과 공약으로 유권자를 현혹했지만 큰 호응을 받지 않았다"며 "마르크 뤼테 총리가 이끄는 자유민주당이 다시 제1당이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모로코 출신이라고 밝힌 30대 여성인 와우펠 바리는 빌더르스에 대해 더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빌더르스는 유세 과정에 모로코 출신을 '쓰레기'라고 하고 이슬람에 대한 반감과 난민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 일으키려고 애썼다"면서 "하지만 이런 선거전략이 어리석었다는 점이 입증됐다"고 지적했다.
기독민주당(CDA)에 표를 던졌다고 밝힌 올해 28세 여성 소피는 "빌더르스 대표는 인종차별주의자"라면서 "빌더르스가 내세우는 이슬람에 대한 박해와 차별, 난민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빌더르스 대표와 정치적 대척점에 선 예시 클라버 녹색좌파당(GL) 대표를 지지한다는 30세 남성 프릭은 "빌더르스가 내세우는 반난민·반이슬람 정책이 네덜란드에서 많은 우려를 낳고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됐다"면서 "이런 미친 바람을 막기 위해 녹색좌파당에 투표했다"고 밝혔다.
반면에 올해 53세인 리처드 반 보헤멘은 "기성 정당이 그동안 거짓말을 너무 많이 했다"면서 "지난 총선 후엔 서로 정치적 색깔이 다른 데도 권력을 잡기 위해 연대하기도 했다. 기성 정치권은 정책도 뚜렷해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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