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뿐 아니라 일상·자연풍경 사진 많이 남겨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다시 한국에 갈 수 있다면 남산에 올라 서울의 변한 모습을 머릿속 옛 모습과 비교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해 250장의 컬러사진을 남기고, 이후 미국 버지니아텍에서 세계적 지질학자로 이름을 남긴 듀이 맥린(Dewey McLean) 박사가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국내에 전해졌다.
18일 학계에 따르면 맥린 박사는 지난해 8월12일 지병이 악화해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맥린 박사의 사진이 국내에 알려진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그는 한국전쟁 기간인 1952년부터 1953년까지 미8군 제3철도수송단에서 상병으로 근무하면서 캐논의 1949년형 IIB(Version 1) 카메라로 그 많은 사진을 남겼지만, 자신의 블로그에만 간직했다.
그러다 2013년 재미 민간사학자 유광언씨가 이들 사진을 연합뉴스에 소개하면서 빛을 보게 됐다. 당시 많은 독자가 댓글을 달거나 자신의 SNS에 사진을 소개하며 관심을 보였고, 연합뉴스TV의 관련 리포트도 4만 6천여 뷰를 넘었다.
맥린 박사의 사진에는 폐허가 된 시내 배경으로 남산자락을 걷는 봇짐장수부터 푸른 한강, 지금은 사라진 조선신궁 등 다양한 서울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는 특히 전쟁 폐허 속에서도 이어진 서민의 일상과 자연풍경을 많이 찍었다.
맥린 박사는 생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한국에 대해 "지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부지런한 국민이 자유를 성취한 훌륭한 모델"이라며 "앞으로도 역동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국가"라고 평가했다.
남북으로 분단된 현실에 대해서도 "북한에 건설적이고, 국제사회와 협력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타나는 게 (통일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진단하는 등 한국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그는 세 차례 뇌 수술로 신경병을 앓았지만 지질학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사진들을 소개하는 책을 내고 싶다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특히 한국에 꼭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어 회복될 때까지 구글로 한국 지도를 찾아본다고 전했다.
재활치료로 회복 중이던 그는 안타깝게도 갑자기 병이 재발하면서 그 꿈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맥린 박사가 자신이 찍은 250장의 한국전쟁 사진 중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꼽은 건 사라져버린 조선신궁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 시 제출된 한양도성 사진도 아니었다.
그가 반세기 후에도 생생하게 기억한 사진은 '동생을 업고 폐허가 된 서울 시내를 걷는 한 소녀'였다. 그만큼 전쟁 중에도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잃지 않았던 그였다.
"더운 여름날 군용 트럭들이 다니는 길 사이로 동생을 업고 지나가던 작은 소녀가 잊히질 않는군요. 너무 지쳐 보여 말을 걸고 싶었지만 사라진 후였죠.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그 소녀는 어떻게 됐을까 자꾸 생각이 납니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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