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세계적 모터쇼 행사 겹쳐 유명 전기차 업체 대거 불참
변화 없는 내용·부실한 행사진행 "초라한 국제행사" 전락해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국제전기차엑스포라는데, 그다지 볼 게 없네요."
행사 사흘째인 지난 19일 제4회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가 열리고 있는 제주 서귀포시 여미지식물원을 찾은 김모(42·제주시)씨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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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엑스포 때도 행사장을 찾았던 김씨는 "작년에는 아이오닉, 쏘울, SM3, i3, 리프 등 대부분의 전기차를 모두 직접 타볼 기회가 있었지만, 올해는 참가하지 않은 차종도 있다"며 "가장 기대를 모았던 GM의 볼트는 시승기회조차 없어 아쉽다"고 털어놨다.
그는 "내용 면에서 작년 행사와 달라진 건 볼트 출시 외에 사실상 없을뿐더러 전체적으로 행사가 절반으로 줄어든 느낌"이라며 "국제행사라 하기에 너무 초라하다"고 말했다.
세계 유일의 순수 전기차 축제인 전기차엑스포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에 치이고, 3월 들어 연이어 열리는 국제 모터쇼 행사에 밀리는 한편 변화 없는 내용과 부실한 행사진행으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사드 한반도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갈등의 불똥이 전기차엑스포에까지 튀면서 중국의 대표적인 전기차 기업인 비야디(BYD) 등 중국 업체 상당수가 전시 계획을 취소했다.
중국의 테슬라로 불리는 넥스트EV 리빈 회장의 기조 강연이 무산됐고, 인민일보 대표 역시 불참했다.
이 때문에 애초 200개 업체가 참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전기차엑스포의 규모는 155개사로 줄었고, 관람객 역시 크게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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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자동차 업계의 애플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전기차 바람을 일으킨 미국 테슬라는 물론 독일 BMW와 일본 닛산 등 주요 업체들도 불참 통보를 하면서 전기차엑스포는 개막 전부터 '반쪽짜리 국제전기차엑스포' 또는 '동네잔치'가 되지 않겠느냐는 걱정을 낳았다.
이 같은 우려는 3월부터 열리기 시작한 굵직굵직한 국제 모터쇼 행사와의 경쟁에서 밀리며 현실이 됐다.
지난 7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팔렉스포에서 개막해 19일 폐막한 세계 5대 모터쇼 중 하나인 '2017 제네바 국제 모터쇼'와 오는 31일부터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2년마다 열리는 국내 최대 모터쇼인 '2017 서울모터쇼'에서 세계 굴지의 완성차 업계들이 각종 친환경차와 미래차의 기술력을 뽐냈고, 국내에서도 선보일 예정이다.
해마다 전기차엑스포에 참여했던 BMW와 닛산은 올해 제네바는 물론 서울모터쇼에 참여하는 대신 제주를 찾지 않았다.
전기차라는 제한된 주제로 비교적 작은 시장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의 전기차엑스포에 적지 않은 참가 비용을 들이며 서울모터쇼와 중복으로 참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2월 제주도의회에서는 "전기차엑스포 폐막 일주일 후 바로 서울모터쇼가 예정돼 있어 국내외 업체들이 두 행사를 저울질하며 일정과 예산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며 "제주의 대표 MICE(마이스) 산업으로 4회 개최라는 경험이 무색할 정도"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 조직위원회는 이 같은 국내외 여건을 만회하기 위한 최소한의 운용의 묘조차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엑스포는 제주 여미지식물원 전체를 주요 전시장으로 활용함으로써 '전기차와 자연의 융합'이라는 친환경 콘셉트를 부각하려 했지만, 기획 의도를 현장에서 구현해내는 데 실패했다.
행사장을 관람한 강모(39·여·제주시)씨는 "화단에 주차할 때 굳이 전면 주차를 하지 않아도 되는 등 매연이 나오지 않는 전기차의 장점이 이번 행사에서 드러나야 하는데 식물원 내에 전기차를 한 대도 전시하지 않았다"며 "대신 별도의 대형 천막 안에 전기차를 전시해 식물원과 엑스포 행사가 전혀 어우러지지 않아 너무 부자연스러웠다"고 꼬집었다.
전기차엑스포의 주요 행사인 콘퍼런스를 여미지식물원에서 도보로 20∼30분 거리의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에서 따로 개최해 행사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왕복 2차선 비좁은 도로 맞은편에 시승행사장을 마련, 들어오고 나가는 차들 사이에 극심한 교통 혼잡이 개막 첫날부터 연출됐고 행사장 주변에 주차장을 마련하지 않아 관람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김대환 조직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세계 주요 전기차 업체의 참여 문제를 지적한 질문에 "전기차엑스포는 전기차의 '다보스포럼'이지, 모터쇼가 아니다"란 말로 오히려 '대중의 선호도를 고려하지 않은 동떨어진 발상'이란 핀잔을 받기도 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현재의 전기차엑스포에 대한 문제점을 충분히 인정하고, 모터쇼와 정보제공(포럼)의 측면 모두 버려서는 안 된다"며 "행사가 끝나는 대로 국제행사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도록 전면적인 점검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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