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식당'·'편의점을 털어라'·'요상한 식당' 새 이야기로 무장
기존 프로도 인기 여전…"음식보다 사람 얘기로 진화 더 할 것"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좌우지간 한민족은 '맛'과 '멋'을 제대로 아는 민족이다.
한철 바람으로 지나갈 것 같았던 쿡방(요리하는 프로그램)은 노래 경연 프로그램만큼이나 예능가의 확실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그저 재탕 삼탕이 아니라, 내용과 형식도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스타 셰프들의 화려한 개인기를 보여주는 데까지가 한계 아닐까 단정했지만 이제는 연예인과 게스트가 직접 칼을 잡고, 무대는 주방이 아닌 편의점으로 확장됐다.
◇ '윤식당'·'편의점을 털어라'·'요상한 식당'…뭐가 새롭나
여행 프로그램 등에 '맛보기'로 '쿡방' 요소를 가미했던 tvN의 나영석 PD는 이번에는 아예 요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배우 윤여정, 정유미, 이서진이 함께하니 조합부터 심상치 않은 '윤식당'이다. 심지어 신구는 '알바생'이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인근 섬에서 작은 한식당을 열고 운영하는 이야기를 담은 프로그램으로, 전에 없던 콘셉트다. 특히 '초짜' 3명 요리사의 스승으로 셰프 이원일과 홍석천이 '윤식당'의 메인 메뉴인 불고기를 만드는 비법을 전수한 것으로 알려져 더 관심을 끈다.
다만 스토리텔링에 능숙한 나 PD의 특성상 요리 그 자체보다는 식당 운영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한다.
나 PD는 지난 20일 제작발표회에서 "식당 경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부분"이라며 "비현실적인 그림 속에서 작지만 예쁜 식당을 열고, 낮에 번 돈으로 밤에 웃고 떠들고 놀며 시청자들께 대리만족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설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지난 13일부터 정규 편성된 tvN '편의점을 털어라'는 블로그나 인터넷 미디어에서만 화제가 됐던 '편의점 음식 레시피'를 TV로 옮겨오는 데 성공했다.
사실 누구나 쿡방을 보며 이것저것 따라 해보고 싶다가도 도마와 칼을 꺼내 뭔가 날 것을 썰어야 하는 지점이 오면 마음을 접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는 편의점으로 야식을 사러 간다.
'편의점을 털어라'는 그 점을 노렸다. 이왕 편의점에 갔다면 몇 가지를 사서 더 맛있게 조합해보자는 것이다. 최근 편의점엔 없는 게 없기도 하니, 레시피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실패해도 별 부담 없다.
파일럿 방송분에서 토니가 즉석밥과 쌍화차, 호떡 믹스로 명절음식인 약밥을 만드는 기상천외함은 이미 큰 화제가 됐다. 첫 정규 방송에서도 베이커리 못지않은 화이트데이 디저트가 탄생했다.
'편의점을 털어라'와 같은 날 출격한 올리브TV의 '요상한 식당'은 주문도 요리도 게스트가 직접 하는 신개념 시스템이다.
이 프로그램에선 여행 가서 먹어 보고 자꾸 생각나는 음식, 어린 시절 먹었던 추억의 음식 등 다시 먹고 싶지만 요리할 방법을 모르는 음식을 스타들이 셰프와 한 팀을 이뤄 완성해본다.
단순히 요리만 하는 게 아니라 음식에 얽힌 스타들의 추억을 풀어낸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게 강점이다. 다만 첫 방송이 나간뒤 같은 채널에서 지난해 방송된 '아바타 셰프'와의 차별성을 더 강조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 왜 쿡방인가…"생활 속 선택 아닌 필수 요소"
신작들이 계속 나타나는 건 기존 쿡방들이 안정된 흥행을 이어가고 있어서다.
쿡방 신드롬을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요리연구가 백종원의 tvN '집밥 백선생'은 벌써 3번째 시즌을 맞아 최초 여제자인 배우 남상미까지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만능 간장, 만능 된장, 그다음 만능 소스에 대한 기대감도 여전하다.
그가 지상파로 진출한 SBS TV '토요일이 좋다-백종원의 3대 천왕' 역시 전국 방방곡곡 맛집의 요리 고수들이 스튜디오에서 요리 쇼를 벌인다는 콘셉트로 매회 5%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맛집과 요리 장면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게 무기다.
tvN '수요미식회'는 소박한 백반집부터 최고급 레스토랑까지 소개하며 미식가들이 품평하는 방식으로 2015년 1월 시작이래 꾸준한 인기를 자랑한다.
이밖에 신동엽과 성시경이 대가들과 짝지어 매회 한 가지 재료로 요리 대결을 하는 올리브TV '오늘 뭐 먹지? 딜리버리', 국내를 넘어 아시아와 유럽으로 떠나 맛집을 돌아다니는 같은 채널의 '원나잇 푸드트립: 먹방레이스', '집밥'을 제대로 못 먹는 걸그룹 멤버들이 전국 집밥 탐험을 떠나는 E채널의 '식식한 소녀들'도 통통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프로그램들이다.
열 손가락으로 세기도 어려울 만큼 늘어난 쿡방. '이젠 좀 지겹다'는 비판도 없진 않지만 어쨌든 인기를 유지 중인 건 사실이다. 어떤 힘일까.
방송가에선 '음식' 자체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소재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요상한 식당'의 유희경 PD는 21일 "'쿡방' 혹은 '먹방'은 음식을 기본으로 하는데 음식은 생활의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이라며 "사람과 사람 간 관계를 이어주는 훌륭한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송소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어떤 음식을 하느냐', '왜 요리를 하느냐', '어디가 맛집이냐' 등 음식 자체보다는 '누구와 함께하느냐' 등 사람에 집중된 방향으로 '쿡방'이 진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lis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