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이렇게 쉽게 깨지다니"…일본 감성 스릴러 '분노'

입력 2017-03-21 16:31  

"믿음이 이렇게 쉽게 깨지다니"…일본 감성 스릴러 '분노'

재일교포 이상일 감독 "신뢰와 분노의 감정은 연결돼 있죠"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사람이 사람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일본 감성 스릴러 영화 '분노'는 도쿄의 한 가정집에서 발생한 잔혹한 살인사건으로 시작한다. 사건 현장에는 피로 쓴 듯한 '분노'(怒)라는 글자가 보인다.

1년 뒤. 카메라는 지바의 어촌마을, 도쿄, 오키나와에서 외지인으로 살아가는 세 주인공의 삶을 교차해 비춘다. 지바의 항구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사는 다시로, 도쿄에서 광고회사 사원인 유마와 동성애를 나누는 나오토, 오키나와의 외딴 섬에 배낭여행을 온 다나카는 모두 자신의 과거를 숨긴 채 살아간다.

주변 사람들은 처음에 이들을 경계하지만 곧 마음의 문을 연다. 그러나 어느 순간 시작된 작은 의심은 점차 큰 균열을 만들고, 차곡차곡 쌓아올린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영화는 믿음의 감정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인지 보여준다.

여자친구와 동거하려는 다시로가 못마땅한 여자친구의 아버지는 다시로가 TV로 공개 수배된 1년 전 도쿄 가정집 살인사건의 용의자와 닮았다고 느낀다. 나오토를 양성애자로 오해한 그의 애인 유마도 공개 수배된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란다.

마치 사람들은 믿음과 불신의 감정에 한발씩 걸치고 살다 언제든 믿음에서 발을 뺄 준비를 하고 있던 것처럼 보인다.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또 다른 감정은 분노다.

분노를 극단적으로 외부로 표출하는 사람, 분노해봤자 바뀌는 것이 없다며 지레 포기해버리는 사람, 그리고 분노의 화살을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사람 등 분노를 대하는 다양한 모습이 등장한다.

영화는 세 개의 에피소드가 흡인력 있게 전개돼 2시간 22분에 이르는 러닝타임이 길지 않게 느껴진다. 일본 국민배우 와타나베 켄을 비롯해 미야자키 아오이, 츠마부키 사토시 등이 출연한다.

영화를 연출한 재일교포 3세인 이상일 감독은 21일 열린 시사회 직후 간담회에서 분노를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내면에 존재하면서 사라지지 않고 확실하게 있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분노는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누군가는 분노에 빠져들고, 누군가는 분노에 빠지지 않기 위해 타인과 신뢰를 쌓아간다. 신뢰 때문에 깊은 상처를 입을 때도 있고, 신뢰하지 못해 잃는 것도 있다"며 "삶에서 신뢰와 분노가 연결돼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 영화학교에서 수학했다.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악인'(2011)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6년 만에 내놓은 신작 '분노' 역시 요시다 슈이치의 원작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3월30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fusion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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