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시 '향수'를 캔버스에 담았다…재불화가 정택영

입력 2017-03-22 10:52  

[사람들]시 '향수'를 캔버스에 담았다…재불화가 정택영

정지용 손자 고국서 19번째 개인전…'빛의 언어' 주제 75점 전시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정지용(1902∼1950년) 시인의 시 '향수'를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정 시인의 손자인 재불 서양화가 정택영은 오는 24일부터 4월 25일까지 한 달 동안 서울 종로구 팔판동 국무총리 공관 인근에 있는 갤러리 '퐁데자르'에서 19번째 개인전을 연다.

정 화백은 2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시회에서는 '빛의 언어'(The Language of Light·줄여서 'LL')라는 주제로 57점의 작품을 선보일 것"이라며 "할아버지의 시 '향수'를 빛의 언어로 그린 작품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충북 옥천군의 나지막한 고향 마을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선하게 볼 수 있는 작품 'LL-58'(100x200cm), 추수가 끝난 가을 들녘을 그린 작품 'LL-41'(61x49.5cm)은 '향수'를 떠올릴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인 작품입니다.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며 지긋이 눈감고 감상하면 어릴 적 가슴 속에 고여있는 고향 마을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와 제가 뛰놀던 마을이 보일 듯 말 듯합니다."

그는 "빛의 언어로 그린 이들 작품의 이미지는 멀게는 송강 정철(1536∼1593년) 선생의 '사미인곡', '속미인곡'의 정서와도 통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송강은 '성산별곡', '관동별곡', '훈민가' 등을 남긴 가사 문학의 대가로, 정 화백은 그의 직계후손이다.


정 화백이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어떤 사물이 빛을 만났을 때 그 스펙트럼을 포착해 그것을 조형적 스펙트럼으로 재구성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어둠 속에서는 모든 사물이 있다 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사물은 빛을 투과하면 반사하는 면, 흡수하는 면, 굴절시키는 면 등이 생기는데, 각각 다른 오묘함을 추상적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한마디로 '빛과 생명체의 상관관계를 캔버스에 표현한 작품'이라고 할까요. 화면에는 현대 감각이 물씬 풍기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감성을 자극할 만한 독특한 색감을 표현했답니다."

그는 또 "속도, 폭력성, 성적 호기심 그리고 나르시시즘 등 현대인들의 불안정한 정신·심리적 상태를 치유하는 힐링의 한 매체로 화면을 구성했고, 디지털에서 벗어나 예술과 교감하고 소통하며, 우울증과 조울증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정신적 안정, 시각적 희열을 주려는 소명의식으로 작품의 혼을 쏟았다"고 설명했다.

빛은 물리적·감성적 측면에서 보면 언어를 갖고 있다고 그는 믿고 있다. 때로는 강하고, 밝고, 어둠을 물리치는 힘을 지니고 있고,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표면에 빛이 투과될 때 각각 고유한 물체의 언어로 변환돼 소리 없이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문학이 실종되고, 현대인들이 방황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에게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워주고, 존재에 대해 깊이 숙고해 주는 모멘텀을 전해주기 위해 이번에 '빛의 언어'라는 화두를 던진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빛을 낼 수 없기에 자연이 주는 숭고한 빛을 그림이라는 화면에 반영시켜 모든 사물의 존재와 각 사물의 가치를 드러냄으로써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에게 각각의 사물이 자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깨닫게 할 것입니다."

정 화백은 유년시절 배웠던 한문 실력과 탄탄한 드로잉 표현능력을 기반으로 초기에는 극사실 회화인 하이포리얼리즘 경향의 작업을 했다. 이후 1970년대에는 극사실 기법을 통한 우주적 현상론과 인간의 존재론에 대해 탐미했고, 1980년대는 드로잉과 상형문자 획의 드로잉 이미지가 결합한 색면추상으로 표현했다.

1990년대는 민족의 전통적 오방색과 민족성 연구를 통한 한국적 아이덴티티를 모색하다 2000년 들어 생명의 본질과 모든 생명의 존재론적 접근을 통한 생명관과 이에 대한 예찬을 시도했다.

2009년에는 생명의 근원을 하나의 원형질, 즉 씨앗의 타원형으로부터 모색하고 이를 현대적 형태 분석과 해석을 통해 다색을 사용하되 색의 절제를 통한 미니멀적인 현대회화로 생명의 근원을 찾았다.

그는 2015년 이후 단순화한 사물의 상징적 해석을 통해 빛의 근원과 생명의 유기적 관계를 회화적 표현 방식으로 그리기 시작했고, 이번 전시회에서 그런 변화를 탐색할 수 있다.

'빛을 담은 파리의 향기'로 불리는 정 화백은 1986년 첫 개인전 이후 지금까지 프랑스, 미국, 오스트리아, 일본, 홍콩, 핀란드, 한국 등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홍익대 미대 교수(1998∼2006년), 재불예술인총연합회장(2011∼2013년)을 지냈고, 현재 프랑스예술가협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9번째 전시회 개막식은 24일 오후 재불화가들의 고국 전시 공간인 '퐁데자르'에서 열리며, 행사와 함께 인물로 엮은 파리 한인 이민사 'K파리지앙'(파리지성刊) 사인회도 겸할 예정이다. 그는 이 책의 삽화를 그렸다.




ghw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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