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자발적 참여가 관건…재외동포·주한 외국인도 소중한 자산"
부임 한 달…여성 최초 외무고시 수석·부부 외교관 1호 기록 보유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숨 가쁘게 흘러가고 있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이 자국의 이익을 내세워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이 19세기 말 청일전쟁 직전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상대국 국민의 이해와 신뢰를 얻어 정책 결정에 반영하도록 함으로써 우리의 지지 기반을 튼튼히 하는 공공외교가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부임 한 달을 맞은 21일 오후 서울 사직로 외교부 집무실에서 만난 박은하(55) 공공외교대사는 "공공외교의 핵심은 우리의 다양한 매력을 알려 외국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공공외교를 이끄는 국가대표팀의 감독이자 주장이라는 심정으로 전략을 짜고 정책을 수립하는 한편 현장에서 다양한 네트워크 활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대구에서 태어난 박 대사는 부산에서 자란 뒤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1985년 외무고시(19회)에서 여성 최초로 수석 합격해 화제를 모았다. 외시 7년 선배인 김원수 유엔 군축고위대표(사무차장)와 결혼해 부부 외교관 1호로 기록되기도 했다. 인도 2등서기관, 유엔대표부 2등서기관, 뉴욕 영사, 중국 참사관, 유엔대표부 공사참사관, 외교부 개발협력국장, 중국 경제공사 등을 지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지난해 8월 발효된 공공외교법의 주요 내용은 무엇인가..
▲ 공공외교는 정부외교, 경제외교와 함께 외교의 3대 축으로 꼽힌다. 국가 이미지와 위상 제고를 위한 범정부적·범국민적 노력을 끌어내고자 법을 제정했다. 공공외교의 기본계획·시행계획을 수립하는 것과 중앙 부처·지방자치단체·민간의 협력을 도모하는 틀을 만드는 게 골자다.
- 정부가 공공외교 노력을 본격화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 2010년을 공공외교 추진 원년으로 삼고 다각도의 노력을 펼치기 시작했다. 직제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듬해 9월 초대 공공외교대사(마영삼)를 임명한 데 이어 2012년 공공외교정책과를 신설하고 2013년 공공외교협력센터를 설치했다. 공공외교대사 직제와 함께 정책공공외교담당관실과 지역공공외교담당관실을 만든 건 2016년 1월이다.
-- 주요국들의 공공외교 움직임을 설명해 달라.
▲ 미국은 2001년 9·11 사태를 겪으며 반미주의에 대응하는 새 외교 패러다임으로 공공외교를 강화하고 나섰다. 담당 차관직을 신설해 총괄 조정체제를 구축했으며 연간 1조 원의 예산을 들여 해외 여론 주도층을 대상으로 미국 정책을 홍보한다. 일본은 2015년 '전략적 대외홍보'를 3대 국가 과제의 하나로 정해 예산을 4천700억 원으로 3배나 늘렸다. 중국은 최근 G2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중국 위협론'이 대두하자 책임대국론이나 평화대국론 등을 적극 전파하고 있다. 전 세계 110여 개국에 450여 개의 공자학원을 세워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보급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급한 불을 끄느라 이런 분야에 투자가 부족했다. 외국에 나가 보면 아직도 한국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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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들어 한류가 한국의 브랜드를 알리는 데 톡톡히 역할을 했다.
▲ 정부의 도움 없이 문화인들이 이뤄낸 값진 성과다. 그러나 한류는 말 그대로 흐름이어서 고조기가 있으면 퇴조기도 있다. 한류가 오래 유지되고 지구촌 곳곳에 전파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아울러 국제교류재단 등과 함께 순수 예술이나 학문 등의 분야에서도 한국의 가치와 매력을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 최근 우리나라와 미국, 중국, 일본 등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외교적 난제를 푸는 데 공공외교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보는가.
▲ 중앙 정부뿐 아니라 지자체, 국회,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를 활성화하고 네트워크를 다져 친한·지한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최근 들어 각국이 지나치게 국익만 앞세우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제로섬 게임의 국제관계를 낳아 결국 모두 피해자가 된다. 국제 질서의 틀을 윈윈 게임으로 바꾸자는 담론을 형성하는 게 각국 공공외교 담당자들의 역할이다.
-- 대통령 탄핵을 전후한 일련의 사태가 우리나라 공공외교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가.
▲ 시위 장면이나 전직 대통령의 검찰 출두 장면이 세계 각국에 연일 보도돼 대외 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우려된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도 국민의 신임을 배반했다고 판단되면 물러나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앞으로 남은 절차를 어느 나라에서 보더라도 모범적으로 밟아나가는 게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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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1일 부임한 지 꼭 한 달이 됐다. 재임 기간에 해내고 싶은 과제가 있다면.
▲ 미국과 일본의 공공외교 예산은 우리나라 올해 예산(160억 원)의 각각 60배, 30배를 넘는다. 영국, 독일, 프랑스도 미국에 근접한 수준이고 스웨덴도 우리나라의 5배나 된다. 법 제정을 통해 제도적 틀이 마련됐으니 예산을 확충하고 통합적·체계적인 공공외교 플랫폼을 만드는 데 힘쓰겠다.
--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가 관건으로 여겨진다.
▲ 모든 국민이 민간외교관이라는 마인드를 갖도록 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재외공관 공공외교 현장실습원, 글로벌 문화 꿈나무, 청년 및 시니어 공공외교단 등 376명을 '국민과 함께하는 공공외교단'으로 선발해 지난 10일 서울 국립외교원에서 발대식을 치렀다. 올해 413명이 활동할 예정인데 내가 있는 동안 수천 명 규모로 늘리고 싶다. 지난해 3월 정부 유관 부처와 산하기관, 민간단체가 참여하는 민관협력위원회도 출범시켰다. 특히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과 청년들의 활약에 기대를 걸고 있다. 720만 재외동포도 소중한 인적자원이어서 네트워킹에 힘쓰고 있다.
-- 지난해 200만 명을 넘긴 주한 외국인도 밖에서 한국을 보는 인상을 크게 좌우한다.
▲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문화를 체험할 기회가 제한돼 있다 보니 자신이 처한 상황만 보고 오히려 편견을 품고 돌아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주한 외국인들을 소중한 자산이라고 인식하고 이들에게 다양한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 외교관을 꿈꾸게 된 계기는.
▲ 대학교 3학년 때 유럽으로 역사 탐방을 갔다가 역사를 만드는 현장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낮아 외교관을 하면 나라와 국민에게 보탬을 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우리나라가 새로운 역사의 장을 펼치는 시기에 외교 현장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을 뿌듯하게 여기고 있다.
-- 외시 합격자 가운데 여성이 남성을 앞지른 지는 오래됐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여성 외교관으로서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것 같다.
▲ 어느 곳에서나 여성이 가정과 직장 일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지만 외교관은 해외 근무가 많은 것도 장애 요인이다. 남성 외교관의 아내는 남편의 해외 근무지를 따라가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 외교관의 남편이 아내를 따라가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요즘에는 전문직 여성과 결혼하는 사례가 많아 이산가족이 늘어나는 추세다. 나는 남편과 근무지가 엇갈릴 때 두 아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나를 선택해 내가 키웠다.
-- 후배 여성 외교관들에게 조언한다면.
▲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게 중요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바뀌지 않는 일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일은 바꾸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일할 때는 노는 듯이 즐겁게 일하고, 놀 때는 일하는 것처럼 열심히 놀자는 게 내 생활신조다.
hee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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